육교가 끝나는 즈음, 횡단보도 어귀에서 딸기 파는 노점을 본 것은 소주 몇잔에 얼근하게 취한 채 하릴없이 걸어가던 며칠 전의 밤이었다. 입간판까지 세워둔 것을 보아하니 하루이틀 장사하다 판을 접거나 하지는 않을 것 같은데 아무튼 그 노점을 본 것은 그 날이 처음이었다. 바구니 위에 얹어놓은 큼직큼직한 딸기알들이 닦아놓은 것처럼 반지르르하고 탱글탱글하니 탐스러워 보이고 뭐 이런건 아니었지만 슬슬 취기가 올라오기 시작하면서 속이 조금씩 타는 통에 저거라도 한 바구니 사 가지고 들어가면 참 좋겠다, 라는 생각을 얼핏 하긴 했던 것 같다. 그리고 파란불이 반짝, 켜지고 여전히 딸기를 살까, 말까, 살까, 말까를 고민하며 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을 걷는데 뜬금없이 가족들 생각이 난다. 술자리에서 많은 이들은 나의 안부와 함께 가족의 안부를 물었고 특히나 내가 졸업한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고 올해 고3이 되는 동생의 안부를 물었다. 당시 그 자리에서는 마치 시험 답안 읽어내리듯 모두 잘 지내고 계세요, 네, 열심히 하고 있어요, 제가 잘 해야죠 뭐, 라는 식의 대답을 정신없이 주워섬겼지만 정작 나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 서울 물가가 뉴욕을 능가한다는 신문기사가 아침나절 지하철에 깔리는 무가지에까지 버젓이 오르내리는 세상에서 나는 단지 아무것도 내세울 것 없고 특출날 일도 없는 심심한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 싫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서울에 남겠다고 부득부득 우겼고 은근히 대구에 내려오기를 바라는 가족의 마음을 외면한 채 고향을 등지고 있는 상태였던 것이다. 그런 나를, 나의 그 옹졸한 마음을 술자리의 그들이, 바닥이 뻔히 보이는 말간 술잔이 꿰뚫어 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 노점의 빨간 딸기알이 나를 책망하는 듯 했다. 나는 귓등이 후끈 달아오르는 것을 느끼며, 딸기알의 시선을 외면한 채 서둘러 길을 건넜다.
며칠 후 칼칼한 바람이 얼굴을 세차게 때리던 어느 저녁 그 횡단보도에 다시 가 보았다. 날씨 때문인지 그 곳에는 빨간 딸기도, 노점도 없었다. 갑자기 목이 말랐다. 딸기나 한 바구니 사서 들어가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딸기는 그 곳에 없었다. 그 다음날에도, 그 다음날의 다음날에도 노점은 다시는 찾아오지 않았다.
daily life l 2007/03/07 11:12
며칠 후 칼칼한 바람이 얼굴을 세차게 때리던 어느 저녁 그 횡단보도에 다시 가 보았다. 날씨 때문인지 그 곳에는 빨간 딸기도, 노점도 없었다. 갑자기 목이 말랐다. 딸기나 한 바구니 사서 들어가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딸기는 그 곳에 없었다. 그 다음날에도, 그 다음날의 다음날에도 노점은 다시는 찾아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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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책상위에 딸기가..^^
2007/03/07 23:20흔히 지나치는 노점상의 일면을 보는듯 해요.
왠지, 그리움에 쌓인 글들을 보면 노점상을 하는 분들의
이야기가 대부분이라서..
飛정상님의 관점이 달라서 일까?^^
날씨가 많이 춥네요.
자취하면서 제일 싫었던것이 먹을것과 추운것..
두가지였는데..
몸 건강하세요~ ^^
안그래도 며칠째 눈이 펑펑 쏟아져 곤란해 하고 있습니다. 길다란 육교가 눈이 내리면 미끄러워지거든요. 게다가 이 육교는 낡아서인지 바람이 심하게 불거나 큰 차가 지나다니거나 하면 아래위로 움직여요. 동치미님도 늘 건강하세요!
금요일엔 고기 대신 딸기를 먹도록 하자꾸나
2007/03/07 23:21한철 딸기와 사시사철 일용할 양식인 고기를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되지 않는가!
언니, 딸기의 계절이 오고 있어요.
2007/03/10 19:14응,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덧 딸기의 계절이더구나.
내세울 것도, 특출날 것도 없이 나도, 역동적일것만 같았던 타지에서의 삶이 벌써 진부해져버린 여기에.
2007/03/12 09:47하지만 언제나 재미있게 살 것 같은 니 안부가 무척이나 궁금해. 예진이한테서 짤막하게 소식은 들었다만. 언제쯤 우리는 접선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