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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8/17 토니 모리슨, 『가장 푸른 눈』 (3)

“모두가 쉬쉬했지만, 1941년 가을에는 금잔화가 피지 않았다. 그때 우리는 금잔화가 피지 않은 것은 피콜라가 자기 아버지의 아기를 가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조금만 더 조사해보았더라면, 아니 조금만 덜 우울했더라면 우리 씨앗만 싹을 틔우지 못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을 것이다. 모든 씨앗이 싹을 틔우지 못했다. 그해에는 호수 앞의 정원들에서도 금잔화가 피지 못했다. 하지만 피콜라의 아기가 건강하게 태어나기만을 바라던 우리는 오로지 우리가 걸어놓은 마법에만 신경을 썼다. 우리가 씨앗을 심은 후 주문만 제대로 외웠다면 그 씨앗들은 꽃을 피울 것이고, 모든 일이 순조로울 것이라 믿으며.

  언니와 나는 한참 후에야 씨앗에서 초록색 싹이 나오지 않으리란 사실을 인정했다. 일단 그 사실을 인정하게 되자, 우리는 잘못을 서로 미루며 싸웠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여러해 동안 나는 언니가 옳다고 생각했다. 그건 순전히 내 탓이었다. 내가 씨앗을 너무 깊이 심었던 것이다. 그 땅이 불모지라는 생각은 아무도 하지 못했다.”

- 토니 모리슨, 『가장 푸른 눈』 중에서


#1


  셋째 이모의 성화에 드디어 우리 집에도 작년 한 해를 강타한 베스트셀러 『시크릿』이 책장에 꽂히게 되었다. 이모의 말만 듣고 있으면 대한민국에서 그 책을 읽지 않은 것은 이제 우리 가족밖에 남지 않은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에 그래도 대열에서 낙오하는 사람은 되지 말아야지 하는 심정으로 아르바이트 나가는 동생에게 부탁해 시내 서점에서 한 권을 사서 읽었던 것이다. 그 책이 전하고 있는, 이제는 사천오백만 국민이 다 아는(듯한) 비밀을 한 마디로 정리하면 ‘생각하는 대로 이루어진다’는 거다. 긍정적인 생각을 하면 긍정적인 일들이, 부정적인 생각을 하면 부정적인 일들이 눈 앞에 현실화된다는 것. 그러니까 그 책은 언제나 긍정적인 생각을 하고 간절히 원하고 믿으면 모든 것이 이루어지리라, 고 이야기하고 있다. 태곳적부터 전해져 내려왔다는, 전 세계를 들었다 놨다 했던 비밀 치고는 참 간단하지 않은가.


  그런데, 간절히 원하고 줄곧 그것에 대해 생각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책에서는 그것에 대하여 그 사람의 믿음이 부족했기 때문이고 이루어지리라는 당연한 사실을 의심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믿음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그 믿음을 가진 사람의 잘못이지 절대로 이 ‘비밀’이 잘못된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의심을 하면 바라는 것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부정적인 생각을 하면 그것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무조건적으로 ‘믿어라!’ 그러면 구하게 될지니.


#2


  그리 멀지 않은 옛날 어느 마을에 검은 피부와 검은 눈을 가진 한 소녀가 살고 있었다. 그 소녀가 이 ‘비밀’을 알고 있었는지 몰랐는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그 소녀도 꼭 이루고 싶은 간절한 소원을 하나 가지고 있었다. “앨리스와 제리의 이야기책에 나오는 눈 보다 훨씬 더 예”쁜, 푸른 눈을 갖게 해 달라는 것이었다. 소녀는 매일매일 자신의 소원을 이루어 달라고 하느님께 간절히 빌고 또 빌었다. 얼마나 그 소원이 간절했는지 소녀는 뽀얀 피부와 노란 머리와 푸른색 눈동자를 가진 셜리 템플이 새겨진 컵으로만 우유를 마실 정도였다. 그러나 간절한 기도에도 불구하고 소녀의 눈동자는 여전히 검은 색이었고 소녀는 거울을 볼 때마다 자신의 눈동자가 여전히 검은 것에 대해 실망했다. 기도가 쌓이고 쌓이는 동안 어린 시절 백인 남성들에게 굴욕당한 기억이 있는 소녀의 아버지는 자신의 딸을 임신시켰고 그 와중에도 소녀의 엄마는 자신의 딸 보다는 자기가 가정부로 일하고 있는 집의 파란 눈의 아이를 더욱 사랑스러워 하며 딸처럼 돌보았으며 집은 점점 더 가난해지기만 했다. 기도에 지친 – 그리고 배가 부르기 시작한 - 소녀는 결국 마을의 주술사를 찾아갔고, 그 주술사는 그 소녀에게 “푸르디푸른 두 개의 눈”, “코발트 빛 푸른 눈”을 주었다. 다른 사람은 아무도 볼 수 없는, 그 소녀에게만 보이는, 앨리스와 제리의 이야기책에 나오는 눈 보다도 훨씬 더 예쁘고 조안나와 미셀리나의 눈 보다도 더욱 푸른 눈을 - 그리고 주술사는 소녀의 기도에 응답하지 않은 하느님에게 보내는 편지를 쓴 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드디어 푸른 눈을 가지게 된 소녀는 거울 앞에 앉아 거울 속의 친구와 자신의 푸른 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소녀는 거울 속에만 존재하는 친구에게 자신이 정말 푸른 눈을 가지게 되었냐고 묻고, 자신의 눈이 예쁘냐고 묻고, 자기가 가지게 된 눈이 세상에서 가장 푸른 눈이냐고 또 묻는다. 대답하기에 지친 거울 속의 친구는 화를 내며 가 버리면서, 그 소녀가 “가장 푸른 눈을 갖게 되면 돌아올” 것이라 약속한다....“일은 그렇게 되었다.”


#3

“내가 푸른 눈을 갖게 된 뒤부터 엄마도 나를 바로 쳐다보지 못해. 나를 질투하는 걸까?
엄마만이 아니야. 모든 사람들이 나를 질투하는 것 같아…… 내 눈이 푸른색으로 바뀌었는데도 아무 말도 안 하다니, 나를 질투하는 게 분명해.
다들 내 눈을 못 본 척하다니……우습지 않아? 우습지 않냐고……”

“그 아이는 미쳐버렸다. 그녀의 정신 이상은 우리를 지루하게 했고, 그렇게 그녀는 스스로를 보호했다…(중략)…그리고 지금 나는 쓰레기를 뒤지는 그 아이를 본다. 무엇을 찾을까? 우리가 몰래 죽인 것들을 찾을까? 씨앗을 너무 깊게 심어서가 아니라 우리 마을의 토양 때문에 싹이 트지 못했다는 사실을 지금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해에는 온 나라의 땅이 금잔화를 피우기에 적당하지 않았다. 이 나라의 흙은 어떤 꽃들에게는 맞지 않다. 어떤 씨앗들에게는 양분을 주지도 않는다. 열매를 맺을 수도 없게 한다.
  땅이 그의 의지로 무언가를 죽이면, 우리는 묵인하면서 그 희생자는 살 권리가 없다고 말한다. 물론 잘못된 것이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너무 늦은 것이다. 적어도 내가 사는 마을 변두리에서, 쓰레기와 해바라기들 사이에서는, 그것은 너무나, 너무나, 너무나 늦은 것이다.”


소녀는 간절히, 아주 간절히 소원을 빌었고 단 한번도 그 소원을 의심해 본 적도 없었다. 그리고 태곳적부터 전해져 내려온 그 거대한 비밀이 말 한대로, 어떤 의미에서 소녀는 그 소원을 이루었다. 푸른 눈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러나 금잔화가 피지 않은 그 해 - 소원이 이루어진 대신 소녀가 낳은 아이는 조산으로 죽어버렸으며, 다른 이들은 그 소녀가 ‘미쳐버렸다’고 말했다. 어른들은 소녀를 보고선 고개를 돌렸고 아이들은 소녀를 대놓고 비웃었으며 그 외면과 비웃음 사이에서 소녀는 “날려고 계속 날개를 무모하게, 우습게 파닥거리는 한 마리의 새”, “공기를 가르는 날개가 있으나 땅에서만 지내는 새”, “날아오를 수 없고, 볼 수도 없지만 가슴을 가득 채우는 푸른 창공을 목말라 하는 새”같이 살았다.


지금도 어떤 학교에는 교실 한 벽면에 ‘하면 된다’라는 글귀가 진리처럼 걸려져 있고, 아시아 어느 나라의 대통령은 한 대학 강연에서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은 더욱 열심히 공부해 장학금을 받으면 된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지금도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고 있는 책 『시크릿』은 – 나는 어제도 지하철 안에서 그 책을 읽고 계시는 한 아주머니를 보았다 – ‘구하면 이루어진다. 다만 의심하지 말지어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나 역시도, 그 책이 가르쳐 준 비밀에 따라 언제나 나에게는 운과 성공이 따라다니고 있음을 믿어 의심치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가끔은, 그러니까 오늘처럼 여동생의 대학 등록금 고지서가 집으로 날아든다던가 하는 날이 오거나 하면, 어쩔 수 없이 가슴 한 구석에서 “세상에서 가장 푸른 눈”을 가진 검은 피부의 소녀가 고개를 쳐들고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간절히 믿고 원하면 이루어지는 것도 사실이지만, 어떤 때는 땅조차 자신의 몸에 뿌려진 씨앗을 거부하는 경우가 있는 것도 사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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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17 20:32 2008/08/17 20:32
book reviews l 2008/08/17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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