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학년이 시작되면 으레 가정환경조사라는 걸 한다. 형제가 몇명이나 있는지, 부모님은 모두 잘 살아 계신지, 부모님의 직업은 무엇인지, 각자 믿고 있는 종교가 있다면 무엇인지 같은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거수를 통해 간단히 조사하는, 아마도 당시에는 비교적 중요했을 연례행사같은 것이다. 몇 학년이었는지는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아무튼 내가 고등학생었던 것은 분명했던 이른 봄의 어느날에도 어김없이 그런 걸 했었다. 형제가 한 명 있는 사람, 형제가 두 명 있는 사람, 형제가 세 명 이상 있는 사람, 외동인 사람 - 선생님은 평소와 다름 없는 목소리로 조사용지에 적혀있는 항목들을 담담히 읽어나갔고, 우리는 다들 조금씩 낯선 얼굴들의 눈치를 살피며 손을 들었다. 그 때, 짝이 내 옆구리를 쿡 찌르며 뭐라고 말했다.
"야, xx이는 왜 외동딸이면서 손 안드냐?"
어, 누구, 하고 순간적으로 고개를 돌린 순간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손을 들지 않은 채 묵묵히 고개를 떨구고 앉아 있던, 중학교를 같이 나온 친구의 얼굴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나는건 이름 석 자, 유난히 하얗던 얼굴과 조금 튀어나온 광대뼈, 차분하게 가라앉은 단발머리가 전부지만 한때 우리는 '조금'이라는 말 이상으로 친했었다. 그리고 뒤이어 수면위에 떠오른 기억의 한 부분들. 그 아이의 오빠는 우리가 같은 학원에 다녔던 중3 여름 오토바이 사고로 죽었다. 며칠동안 학원에 안 나오던 아이가 평소와 다름 없는 얼굴로 수업에 나왔을 때 나는 그저 한 며칠 아팠겠거니 했다. 허나 그 친구는 말했다. 우리 오빠가 며칠 전에 죽었어. 오토바이 사고였어. 엄마랑 아빠는 장례 준비로 바쁘고 오빠 여자친구도 와서 막 울었어. 조금 전 까지만 해도 그저 조금 핼쓱했을 뿐이었던 친구의 얼굴은 금방 빨갛게 달아오르고 눈에서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나는 그저 옆에서 어떡하니, 어떡하니, 따위의 의미없는 말들을 되풀이할 뿐이었다. 그리고 눈물이 나오려고 그랬는지 잠시 눈가가 따끔따끔하기도 했지만, 수업이 시작되자 친구 오빠의 죽음 같은건 까맣게 잊어버렸다.
내가 마흔이 되고 쉰이 되고 예순이 되면, 아마 내가 알던 얼굴들의 반쯤은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이 되겠지, 라고 중학교 3학년 때의 담임선생님은 말했다. 어렸을 때 할머니 댁의 옆집에 살았던, 가끔씩 할머니 댁에 갈 때면 소꿉놀이를 함께 했었고 미술학원에 다니게 되었다고 자랑했었던 꼬마아이는 채 일곱살이 되기도 전에 물탱크에 빠져 숨진 채 발견되었다. 동네 사람들은 젊은 대학생이랑 바람난 그 애의 아빠가 애를 납치해 데리고 다니던 와중에 그랬을 거라고 수근댔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내 짝이기도 했던, 유난히 목소리가 예뻐 교내 독창대회에서 금상을 도맡아 타던 한 여자아이는 중 2 여름방학 어느 날, 가족들과 함께 계곡으로 놀러갔다 결국 살아돌아오지 못했다. 잠깐 가족들이 한 눈을 판 사이에 그만 몸에 중심을 잃고 휩쓸려갔을 거라고 친구들은 이야기했다. 그리고 지금, 무슨 이유에서인지 이런 이야기를 하나씩 끄집어 내는 나는, 아무리 예전의 기억들을 되짚어보려 애써도 그 아이들의 이름이 무엇이었는지, 얼굴은 어땠는지 이야기 할 수 없게 되었다. 시간이 흘러 가면, 생전에 어떤 식으로든 관계가 지속되었다 하더라도 대개의 사람들은 이렇게 되기 마련인지.
그러나 모든 사람이 떠난 사람들을 잊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한 두 사람, 아니 그 이상은 누군가의 죽음을 늘 가슴 속에 묻어둔 채 그들의 부재를 슬퍼하고 기억해 줄 것이다. 이제는 외동딸이 되어버린 내 친구가 이른 봄의 그 아침에 끝까지 손을 들지 않았던 것 처럼. 또한 가끔은, 나 같은 사람도 그들의 이름과 얼굴을 기억해내려 애쓰며 그들을 추억할 것이다. 아주 잠시뿐이겠지만.
There was a time, I was so lonely
Remember the time, it was on Friday
You made me feel fine, we did it my way
I sat on your knees, every Friday
We walked in fields of golden hay.
I still recall you.
We walked in fields of golden hay.
I see you in the summer.
Joe. Joe.
I sat on your chair, by the fire
Transfixed in a stare, taking me higher
Precious years to remember
Childhood fears, I surrender
We walked in fields of golden hay.
I still recall you.
We walked in fields of golden hay.
I see you in the summer.
Joe. Jo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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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련한 기억... 생각나게끔. 꼭 그런 상황이 살다보면, 있는거 같아요~
2007/02/04 01:37이런 기억을 '아련하다'고 표현하기에는 뭔가 놓치는 듯한 기분이 들어요. 제가 일기에다 이런저런 일들을 적어놓는것이 과연 잘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무튼 갑자기 생각이 났습니다.
크렌베리즈 오랜만이네, 처음 크렌베리즈를 들었을때도 네가 알려줘서 들었었는데.. :)
2007/02/04 12:56이 노래는 1991년 사망한 돌로레스의 할아버지를 기리는 곡이라는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