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3일부터 일주일간 교토에 갈 거란 계획을 지난 번 포스팅을 통해 알린 덕분에 많은 분들이 내가 교토에 갔다온 줄 아시겠지만, 실은 지금 하고있는 프로젝트의 상반기 결산을 좀 빨리 해 달라는 연락이 와서 결국 교토에 가지 못했다. 30만원이 채 안되는 티켓을 취소하느라 무려 6만원이란 요금을 물고, 현지에서 만나자는 이런저런 약속을 해 둔 친구들에게 급한 일이 생겨 못 가게 되었다고, 미안하다고 일일이 사과하면서, 왜 하필 나인가 하는 억울함을 꾸역꾸역 삼키기 위해 나는 다시 한 번 개미지옥보다 빠져나오기 더 힘들다는 팔자론을 떠올렸다. 울고불고 난리를 쳐도 어쩔 수가 없는 게 팔자란 것이니, 이걸 받아들이면 만사가 편해진다, 했다. 그렇게 마음을 겨우 달래고 나니, 체념에 가까운 평안이 가까스로 찾아드는 듯도 했다. 엄마는 지금 일본에 강풍을 동반한 폭우가 내려 10만 가구가 대피하고 아주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다는 뉴스가 나오더라면서, 내 여행이 취소된 게 오히려 잘 된 일이라고 했다. 굳이 여행을 가고 싶으면 어디 조용한 절에 머물면서 쉴 수 있도록 템플 스테이를 주선해 주겠다고도 했다. 나는 모든 걸 다 때려치우고 한 일주일 정도 교토에 가서 쉬고싶어 비행기표를 구입했다고 했을 때 울먹이던 엄마의 목소리가 생각나, 그냥 작게 한숨을 쉬고, 지금은 바쁘니 나중에 얘기하자고 했다. 그리고 전화를 끊었다.
결산이 한창이던 수요일 새벽에는 그날 아침에 있을 조찬모임을 준비해야했기 때문에 모두가 집으로 돌아가고 텅 비어버린 연구소에 남아 있었다. 나도 모르게 깜박 잠이 들었다가, 한 30분이나 잤을까, 만일을 대비해 맞춰놓은 알람소리에 놀라 잠에서 깼다. 시간이 말도 안되게 흘러버렸으면 어쩌나 싶어 허겁지겁 눈을 뜨려는데, 어쩐지 눈꺼풀이 평소보다도 무거워 눈가를 대충 만져보니 눈물로 범벅이 되어 미끌거리고 축축했다. 꿈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기억해 보려고 해도 잘 생각나지 않았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했다. 꿈의 배경은 분명히 교토였다. 그래서 결심했다. 다시 한 번 교토에 가자. 꿈에서도 못 잊을만치 간절하고 그립다는데, 까짓거, 저 40도가 넘나드는 축축한 열사(?)의 도시로 나는 가자. 이것은 지난번보다 훨씬 더 충동적인 결정이었고 오를대로 올라버린 엔화를 고려하면 심지어는 합리적이지도 않은 결정이었지만, 일전에도 밝혔듯이 내가 언제는 계획 세워놓고 사는 사람이었나. 그렇게 나는 다시 한 번 교토로 가는 비행기표를 끊었다. 이번에는 8월 12일부터 18일까지, 6박 7일의 일정이다. 좀 더 일찍 떠나고도 싶었지만 요즘이 딱 성수기인데다 한정된 예산을 생각하면 그나마도 빨리 떠나는 것이다.
그 다음 일은 빠르진 않아도 그럭저럭 진행되고 있다. 우선은 결산작업을 마무리하고, 그끄저께는 그나마 한국인이 적게 온다는 게스트하우스를 고리고 골라 예약했고, 그저께와 그제는 교토 여행기 중 볼만하다 싶어 보이는 걸 대여섯권 정도 골라 구입하고 마음 내키는대로 읽으면서 어떡하면 엿새 동안의 일정을 후회없이 보낼 수 있을까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러고 있자니, 내가 또 언제 어떤 일에 이만치 열심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어 새삼스럽기까지 하다. 물론 그렇든 말든 내가 정해진 시각 정해진 장소에서 정해진 날짜에 정해진 비행기를 타고 떠날 것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8월 19일에 동경에서 갑자기 회의가 열리게 된 것이 좀 불안하긴 하지만 정말 피치못한 사정이 일어나지 않는 한 나는 약 20여일 후에는 교토에서 일기를 쓰고 있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세상에 무서울 것이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마음 한 구석에는 스멀스멀 불안이 올라온다. 회의때면 으레 따라오는 여러가지 잡무들에 치여 또 한 번 티켓을 취소하게 되는 건 아닌가, 하는 불안감도 불안감이지만, 그보다 더 나를 괴롭히는 것은 '왜, 하필, '다시' 교토인가' 하는 근본적인 물음이었다. 사실 교토 말고도 나에겐 몇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일본 여행에 쓸 돈으로 차라리 어느 지방의 소도시쯤에 가서 호화(?) 생활을 며칠 느긋하게 즐기다 오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었고, 홍콩이나 싱가폴이나 태국처럼, 며칠 동안은 나를 책임져줄 수 있는 친구들이 있으면서도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으로 행선지를 정할 수도 있었다. 실제로 싱가폴에 사는 친구한테는 언제쯤이 한가하겠느냐고 물어보기까지 했으니까. 그러나 이 모든 선택지들을 깡그리 무시하고, 결국 나는 또 한 번 교토행을 택했다. 그래도 모처럼의 여행인데 새로운 곳에 가 보는 것이 어떠냐는 주위의 조언도 내팽개쳤다. 일본이 평소에 못 가는 데도 아니고, 모르는 곳도 아닌데 꼭 생활비를 헐어서까지 가야겠냐는 핀잔을 들을까봐 부모님께는 아직 말씀조차 드리지 않았다.
그렇게까지 해서 꼭 교토에 가야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고 묻는 이가 일본인이라면, 나는 아마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교-토와 와따시니톳떼와 다이니노 고쿄 미따이나 바쇼데스까라(京都は私にとっては第二の故郷みたいな場所ですから。교토는 저에게 있어선 제 2의 고향같은 곳이니까요.) 그러나 이건 쌍방이 듣기 좋자고 하는 소리라, 그런 말을 하면서도 스스로는 마음 속으로 이렇게 질책할 것이다. 사실은 굳이 교토가 아니어도 괜찮지 않느냐고. 너는 단지 하루 하루를 무사히 보내는 것 만으로도 크나큰 성취감을 맛볼 수 있었던 그 때 그 시절로 도피하고 싶은 것 뿐이지 않느냐고. 장래희망이요? 일본의 작은 도시에 가서 편의점 직원이나 하면서 프리타로 사는 거예요, 라는 말이 금방 그렇게 튀어나올 수 있는 건 실제로 그렇게 할 용기도 없으면서 단지 말만 많다는 증거인거야, 애초에 너는 말이 너무 많아, 하는 지적을 받은 적도 있었다. 그러니 어쩌면 이 글은 여행기, 가 아닌 도피기, 라는 제목을 달아야 할 지도 모른다.
한편으로는, 그 당시엔 멋도 모르고 헛되이 보내버렸던 시간이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 나날들이었는지, 지금은 그 때가 26년의 인생을 통틀어 마냥 '일탈'이었던 것 처럼 느껴지지만 당시에는 그것이 나름의 '일상'이었음을, 그러니까 내 삶에는 '이러한 일상도' 있었음을 몸소 확인하러 가는 것이라고 대답할 수도 있다(솔직히 틀린말도 아니지 않는가, 아무도 나에게 틀렸다고 말 한적도 없지만). 그리고 그렇게 내 눈으로 한 번 확인하고 나면 적어도 반 년 정도는, 다시금 내 인생이 세계에서 제일 비참한 듯 착각하며 팔자론을 곱씹지 않아도 그럭저럭 버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희망도 가지고 있다. 겨우 반 년, 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반 년은 내가 이 이상 대학원에 남아있어야 할 지 말지를 결정하는데 그리 부족한 시간은 아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굳이 '다시' 교토에 가는 이유는, 그 곳이 내 인생의 분기점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남들이 다 겪는 때 사춘기를 제 때 겪지 못한 탓인지 추억이나 기쁨, 같은 것 뿐 아니라 방황이나 우울, 좌절, 자기혐오 같은 것들까지 그 모든 것이, 그 곳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당시에는 알 수 없었지만 그 곳을 떠나온지 3년째로 접어드는 지금에 와서 찬찬히 그 때를 돌아켜보면, 당시부터 지금까지 나는 계속, 자잘한 자갈이나 잡풀더미 따위에 발이 걸리고 무릎이 깨지면서 이유를 알 수 없는 방황을 해 오고 있는것이 분명하다. 물론 방황이 그리 나쁜 것 만은 아니라 이리 저리 고민하다 보면 언젠가는 더욱 나은 상태에 도달할 수 있을 거라는 턱도 없는 긍정적 사고를 따라 생각한다면 이대로 이렇게 지내는 것도 안될 것야 없겠지만, 이놈의 방황이라는 것이 주변의 사람들도 피곤하게 만들 뿐더러 무엇보다 내 자신이 더 이상은 견딜 수 없다, 는 한계를 느낀다. 그렇다고 섣불리 이 구멍들을 틀어막으려 했다간 오히려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지기만 할 뿐이란 걸 몇 번의 시행착오를 통해 겪은터라, 결국 '일을 저지른 사람이 그 일을 해결해야 한다'는, '모든 것은 시작점으로 되돌아 가야만 한다'는 자명한 진리에 따라 급하게 교토여행을 결정하게 되었다.
교토는 나에게 마냥 아름다운 장소가 아니기 때문에, 그리고 하필이면 1년 중 교토가 가장 더운 때를 고르고 골라 가는 것이다보니, 6박 7일의 다소 모자란듯한 일정 속에서 내가 보고 느끼는 것은 대개의 여행기에서 볼 수 있는 찬양 일색의 풍광들이 아닐 수도 있다. 혹은, 이렇게 무리해서 여행을 갔다오고도 결국 내 삶은 여전히 불분명한 채로, 또 어딘가 엉뚱한 곳에서 삽질하며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명쾌한 해답을 찾아 헤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그 누구도, 그 어떤 것도 알 수 없다. 떠나 보기 전에는. 그리고, '떠나 보면 알게 될 것이다'. 따라서 여행을 떠나기 전, 남아있는 시간동안은, 최대한 후회 없는 여행을 하기 위해 여러가지 준비작업들을 하려고 한다. 시간이 난다면 조금은 성실해져서 일기도 꼬박꼬박 써 보고(아, 그러나 글을 쓰는 건 아직은 좀 무섭다. 글을 줄기차게 써 댈 만큼 내 속에 뭔가가 들어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니까 혹여 말씀 한 마디 보태주려 하실 참이었거든 잘 다녀 오라는 격려나 한 마디 부탁드린다(혹은, 글 좀 꼬박꼬박 쓰라고 뒷통수를 후려갈기셔도 좋다). 어쨌든 오늘은 7월 26일, 아끼던 08학번 후배들 몇 명이 입대하는 날이고, 출발까지는 17일이 남았다.
'daily life/in Kyoto'에 해당되는 글 34건
- 2010/07/26 D-17 나는 왜 '다시' 교토에 가는가 (3)
- 2009/04/06 표현형 인간
- 2008/07/24 일본에서의 마지막 포스팅 (2)
- 2008/07/20 세금고지서와 티타임 (2)
- 2008/07/16 달콤한 나의 (오래된) 도시
- 2008/07/02 로마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8)
- 2008/06/27 2008년 7월 27일 일요일 (D-30) (6)
- 2008/06/13 최근 소식 (10)
- 2008/06/11 일본 TV는 미쳤다 (8)
- 2008/05/10 여행 다녀왔습니다(旅行行って来ました) (11)
이런 걸 가지고 계속 생각하기 때문에 '스스로에게 너무 둔하다'라는 진단을 받는지는 모르겠지만, 가끔 나는 내 자신이 '쓰기형 인간'인가 '말하기형 인간'인지 고민할 때가 있다. 다른 이들의 앞에서 내 생각을 발표할 때 듣는 사람들의 반응이 좋거나 혹은 남들의 반응과 상관 없이 스스로가 발표에 흡족함을 느낄 때면 내 자신이 '말하기형 인간'인가 하기도 하고, 반대로 아주 단순한 생각의 실마리를 잡아 글로 정리하는 동안 처음의 그 생각에 뼈대가 서고 살이 붙는 과정을 보면서 아, 나는 영락없는 '쓰기형 인간'인가 하고 생각하기도 하기 때문에 지금 당장 나는 어떤 유형의 인간이다, 라고 말하기엔 어렵다.
그런데 한 가지 중요한 것은, 말하기든 쓰기든 일단 무언가를 내 몸 밖으로 끄집어내는 과정에서 생각이 더욱 명확해지고 그 생각에 실체가 생긴다는 것이다. (말하기나 쓰기의 대상이 있는 경우에는 특히) 일단 그 결과물이 내 몸 밖으로 나오는 순간 그 것은 더 이상 내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는 참 아이러니한 일이라 할 수도 있지만 사실은 사실이다. 오늘만 해도 그러했다. 대학생활문화원에서의 첫 상담에서 상담 선생님께서 '상담을 통해 얻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라고 물어 보셨을 때, 그저 순간 떠오른 생각으로 '어떤 것이 정말 내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고, 어떤 것이 단순히 스스로를 합리화 하기 위한 거짓말인지 구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대답했는데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니 그 대답이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여러 가지의 문제점들에 대한 해답, 혹은 해답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해답까지 갈 수 있는 실마리가 될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러니까, 과연 내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분명하지 못할 때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우선 내 몸 밖으로 끄집어 내 보는 것, 다시 말해 '표현 해 보는 것'이 하나의 답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말하기형 인간'도 아니고 '쓰기형 인간'도 아닌, '표현형 인간'인 셈이다.
귀국은 일요일입니다만, 내일 방을 빼지 않으면 안되는 관계로 오늘까지만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지금 이 글이 일본에서의 마지막 포스팅이 되겠네요. 천리만리 떨어져 있는 나라도 아니고, 마음만 먹으면 하루만에도 갔다 올 수 있는 가까운 나라입니다만 아직까지는 이제 가면 언제 오나 싶은 생각이 앞섭니다. 힘든 일도 많았지만 지나고 나면 그것도 다 소중한 추억이고 힘들 때 곁에서 응원해 준 소중한 인연들도 많이 만난지라, 눈만 감으면 지난 10개월간의 시간들이 꿈처럼 눈 앞을 스쳐가고 골목에 굴러다니는 돌멩이 하나까지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 요즘입니다.
아무튼 다시 이 곳에 포스팅을 하게 될 때 즈음 저는 한국에 있겠군요. 그럼, 한국에서 다시 뵙겠습니다.

장마가 완전히 물러갔다는 기상청의 공식적인 발표는 아직임에도 불구하고 며칠째 이곳 교토는 비 한방울 오지않고 35도를 넘나드는 폭염을 자랑하고 있다. 알고보니 교토도 분지지형 - 여름의 무더위가 트레이드 마크가 되어 아예 관광상품화 되어버린 쿠마모토 같은 곳과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교토의 여름도 대구의 여름만큼이나 유명하다고 한다. 나보다도 나이 많은 낡은 건물 꼭대기층 맨 구석방, 단열이나 방열 따윈 전혀 기대할 수 없는 방 안에서 환기만으로 온도를 조절하는 데는 한계가 있어 지난 달 부터 할 수 없이 에어컨을 틀고 살았는데, 그저껜가 날아온 지난 달 전기세 요금을 보고 깜짝 놀랐다. 거의 만 엔에 가까운 고지서 - 한국 돈으로 치자면 전기세가 10만원 정도 나온 셈이다. 에어컨을 틀면서 전기세가 얼마나 많이 나올까 걱정을 좀 하긴 했었지만 이 정도로 많이 나올 줄은 몰랐던터라 당시 고지서를 든 손이 파들파들 떨릴 정도였다.
안그래도 가기 전에 내야 할 세금만도 근 70만원에 육박하는 터에 이게 무슨 날벼락인고. 어쩌면 돈이 모자라 국제미아가 되어버릴 지도 모른다는 스트레스에 좀 나아졌나 싶었던 무릎이 다시금 지끈지끈 아파왔고, 어제 정리해야 할 일이 있어 무리를 해서라도 좀 돌아다녔더니 급기야 왼쪽 발목도 시큰거리기 시작해 오늘은 원래 계획 했던 일정의 반도 못 완수하고 그냥 집으로 돌아와버렸다. 작년에 엄마가 용하다는 점집에서 내 사주를 보고 와서는 하는 말이 앞으로의 3년동안은 일이 풀리는 상황이 나에게 그리 유리하게만은 돌아가지 않을거라며 부디 조심하랬는데, 어떻게든 전보단 나아진 컨디션으로 귀국하고 싶었는데, 정말로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너무 당연해 생각해 본 적도 없는 간단한 일 조차 지금은 그리 쉽지만은 않다. 아, 천지신명 하느님 부처님 알라신이시여, 저를 왜 시험에 들게 하시나이까.
이러한 이유로 다시금 우울해져 삼복 더위먹은 강아지 마냥 축 처져 방안에 틀어박혀 방 정리나 슬근슬근 하고 있는데, 찬장 깊숙한 곳에서 몇 달 전 귀국한 친구한테서 받은 립톤 옐로 라벨 티백이 나왔다. 일본사람들도 가끔은 못 먹는다는 낫토도 거리낌 없이 먹게 되었지만 여전히 수돗물만은 죽어도 못 마시겠는지라 언제나 물을 끓여 녹차를 식수 대용으로 마시고는 있지만 홍차는 글쎄, 가끔 찻집에 들어가 마시는 것 말고는 거의 마셔본 적이 없어 나에겐 생소하기 그지 없는 차였다. 그 친구가 그랬듯이 나도 여기 남아있는 누군가에게 주고 가야겠다, 라고 처음엔 생각했는데, 그래도 오랫만에 맛보는 홍차가 무슨 맛일까 싶어 예전에 카키하라상에게서 받은 찻잔과 여기에서 알게 된 다른 친구에게서 받은 티포트를 꺼내 물을 끓이고 어설프게나마 홍차를 만들어 마셔 보았더니, 어머나 이게 웬걸, 티백임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괜찮았다. 게다가 원래 몸이 좀 냉한 편인지라 역시나 몸을 차게 한다는 녹차를 마실 때 마다 신경이 쓰이긴 했는데, 어쩐지 홍차를 마시고는 땀이 주룩주룩 나서 조사해 보니 홍차는 차 중에서 몸을 따뜻하게 하는 성질이 가장 강하다고. 아하, 그렇구나. 한국에 돌아가서는 본격적으로 즐겨 마시는 차종을 녹차에서 홍차로 바꿔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지금은 어떻게 하고 있는가, 하니 어차피 찾아올 사람도 만날 사람도 없는 터, 혼자 있는 방안에서 최대한 옷을 간단하게 입고, 만일을 대비해 방문은 꼭꼭 걸어잠그고, 온 몸을 강타한 통증의 근원인 에어컨도 끄고, 갓 끓여낸 홍차에 또한 몸을 따뜻하게 하는 효능이 있다고 알려진 생강즙까지 첨가해 홀짝거리며 느긋하게 TV를 보며 노닥거리면서 땀을 죽죽 빼고 있다. 남들은 땀 빼려고 일부러 사우나에도 가고, 땀복도 사서 입고 하는데 가만히 앉아서 돈 안들이고도 땀을 한 바가지씩 빼고 있으니 이것이 의외로 상쾌하고 덕분에 우울했던 마음이 좀 풀리는 기분이다. 그래, 까짓거, 될대로 되라지(I'll do what I love, and fuck the rest!).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뜨고 내일 걱정은 내일 하면 되는거다. 그러니까 오늘은 세금 고지서고 귀국이고 뭐고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고 혼자서 느긋하게 티타임이나 맘껏 즐겨야겠다.
덧> 티백 포장지에 보니 립톤사에서 진행하고 있는 '히라메키' 캠페인 URL이 쓰여져 있기에 한 번 들어가봤다. '히라메키'란 일본어로 '두뇌의 날카로운 작용'을 뜻하는 단어인데, 홍차에 포함된 테아닌 성분이 두뇌를 활성화 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해서 그걸 포인트로 홍보하고 있는 모양이다(사실 녹차에도 이 성분이 들어있긴 하지만) 일본어가 아닌 다른 언어로도 사이트를 이용할 수 있고 홍차에 대한 이런 저런 정보도 얻을 수 있으며 사이트를 통해 위에 첨부해 놓은 이미지 등으로 다른 사람에게 카드도 보낼 수 있는 모양이니 관심 있는 분은 한 번 접속해 보시라. http://www.lipton-hirameki.com
그러한 기분은 오늘 아침까지 계속되었다. 너무 더워서 온 몸이 땀에 흠뻑 젖은 채 새벽 네시 반에 한 번 깼다 다시 잠든 것이 화근이었는지, 물리치료를 받다가 깜박 잠이 들어버리기도 했다. 그래도 오늘은 병원에 사람이 좀 적어서 20분 정도 일찍 물리치료를 끝내고 병원을 나서는데, 병원 옆의 DVD렌탈샵 앞을 지날 즈음 누군가가 나를 불렀다. 10년 넘게 산 동네에서도 당당하게 길을 헤매는 심각한 길치임에도 불구하고 얼굴만은 현지인같이 생겼는지 여기에 온지 얼마 안 되어서부터 곧잘 길 좀 가르쳐 달라는 부탁을 받곤 했던 나는 또 그러한 일이겠거니 싶어 건성으로 대답하며 날 부른 사람의 얼굴을 쳐다보았는데, 의외로 한글교실의 사에끼 상이었다. 살고 계시는 곳은 여기서 꽤 떨어진 걸로 아는데 어쩐 일로 아침부터 여기 계시냐고 여쭤 보았더니 오늘이 주몽 DVD가 나오는 날이라 일부러 오셨단다. 일본에서는 요즘 BS방송(디지털 방송)을 통해 1주일에 한 번, 한 화씩 한국 드라마 주몽이 방송되는데, 텔레비전으로 꼬박꼬박 챙겨보시기가 좀 어려워 2주에 한 번, 한 화씩 렌탈샵에 나오는 DVD를 빌려보신다고 했다. 간단한 안부인사와 함께 그간의 소식들을 전하고 집으로 돌아가려 발길을 돌리는 데 사에끼 상이 뒤에서 다시 한 번 부르신다. 잠깐 시간 있으면 한 시간 정도 차 한잔 하면서 이야기나 나누자고 하셨다. 다행히 오늘은 그리 급한 일도 없기에 초대에 응했다.
택시를 타고 사에끼 상이 목사님으로 계시는 키타시라카와 교회에 도착해 끓여주신 차를 마시며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다친 곳을 걱정해 주시기도 하고, 한국에 갔던 이야기, 한국에서 있었던 이야기, 한국에서 살던 이야기 등 그리 특출날 것도 없는 이야기들을 이래 저래 나누다 보니 벌써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슬슬 일어나려는 데, 이것 가지고 가서 냉장고에 잠시 넣어 두었다 먹으라며 뭘 챙겨주신다. 갑자기 들이닥친 나를 위해서 급히 나가서 사 오신 고사리떡이었다. 몸 챙기라고 그레이프 후르츠도 따로 통에 담아서 같이 챙겨주신다. 그리고 아침이긴 해도 35도를 넘나드는 이 더운 날씨에, 일부러 버스 정류장까지 나와 내가 버스를 탈 때까지 배웅해 주셨다. 이런 저런 융숭한 대접들을 받고 나니, 아침의 우울했던 기분같은 건 어느새 싹 사라져 버렸다.
여전히 나는 내가 제로섬 게임 같은 인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뭔가를 얻으면 뭔가를 잃는 것도 있고, 그래서 이래 저래 합쳐보면 더한 것도 덜한 것도 없이 딱 0이 되는 인생. 주변에 아무런 어려움이나 곤란한 일 같은 것 없이 잘 살고 있는 것 처럼 보이는 사람을 보면 괜시리 조금은 부럽고 조금은 억울해 지기도 하는 그런 인생. 그러나,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 제로섬 게임의 인생을 산다는 것은, 다시 말해 하나를 잃으면 반드시 하나를 얻는다는 말도 된다. 요 근래 건강이 나빠지고 미래에 대한 고민들은 점점 눈덩이처럼 불어나는데 달리 기댈 사람도 어디 말할 사람도 없이 혼자서 끙끙 앓으며 이제나 저제나 떠날 날만을 손꼽고 있던 나에게 오늘의 그 한 시간은 정말로 고마운 것들이었고, 또 그 고마운 일들을 어느새 잊어버리고 있던 내 정신을 번쩍 들게하는 경험이었다. 몸이 아프고 혼자 앓을 수 밖에 없으면서도, 그래도 내 주변엔 내 안부를 물어주고 걱정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말하자면 일종의 제로섬 인생의 축복 같은 거였다.
여전히 습하고 푹푹 찌는 날씨, 쨍쨍 내리쬐는 햇볕. 어제나 다를 바 없는 거리의 풍경들을 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은 어제완 다르게 이 거리에 대한 애정이 샘솟았다. 이런 저런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그래도 잊을 만 할 때 잊지 않고 고마운 일이라거나, 행복한 일이라거나, 즐거운 일 같은 걸 가르쳐 주는 이 오래된 도시의 거리 - 오늘은 어쩐지, 아직 이 거리를 떠나기 전임에도 불구하고 벌써 이 거리가 그리워 지는 기분이 들었다.
덧> 글을 써 놓고 보니 이 글이 블로그의 200번째 글이었다. 200번째의 글에 이런 좋은 일을 쓸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현재 내 소원은 정말 거창한 것이 아니라,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딱 30분간만 걸을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다. 두세달 전부터 아침에 일찍 일어나 근처 공원을 한시간 정도 걷고 나서 학교에 가는 생활에 익숙해져 있었는데, 무릎을 다친 후엔 10분 20분 걷는것도 버겁다. 그 좋아하던 하이힐도 멀리하고 조깅화만 신고 다니는데 건물의 계단 하나 횡단보도의 높은 턱 하나 강의실의 딱딱하고 불편한 의자 하나 하나는 어쩌면 나에게 이리도 불친절한지. 길바닥에 굴러다니는 돌멩이에도 전전긍긍하며 몸이 내 몸이 아닌것 처럼 한 걸음 디디는 것도 조심조심 하다보면 마음껏 움직일 수 없는 답답함에 가끔은 그냥 길바닥에고 어디에고 주저앉아 엉엉 울어버리고 싶을 때도 있는 것이다. 그끄저께엔 이젠 좀 괜찮아 졌나 싶어 시험삼아 아침 일찍 20분 정도 살살 걸어봤더니 금방 아파져서 또 무릎에고 꼬리뼈에고 덕지덕지 파스를 붙였는데, 평소엔 하루 정도 지나고 나면 괜찮아질 통증이 이번엔 어쩐 일인지 좀 길어지고 있는 것 같아 또 다시 덜컥 겁이 났다. 병원에서는 뼈나 관절의 이상은 아닌데다 아직 나이도 젊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지만, 완치되는데 까지는 시간이 좀 걸릴거라는데 이게 언제 낫는다는 기약도 없으니 매일 매일 병원에서 가르쳐 준 재활운동도 하고 있고 꼬박꼬박 물리치료도 받는데 왜 상황은 갈수록 나빠지는 건가, 하는 생각에 지루한 장마비가 쉴새없이 몰아치는 날이면 밑도끝도 없이 우울해지는 것이다. 금방 귀국도 할텐데,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가야 할텐데, 하는 생각에 조바심이 나서 나름 이것저것 궁리를 해 보기도 하고.
하지만 결국 답은 하나, '참고 기다리는' 수 밖에 없는 거다. 오늘 나를 괴롭혔던 통증이 자고 나니 갑자기 나아서 하루 아침에 말짱해지는 일은 오늘 내일 하던 늙은 어미가 효심 깊은 아들딸내미가 산넘고 물건너 고생고생해서 캐어 온 약초에 훌훌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던 옛날 이야기에서나 나오는 거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병원에서 가르쳐 준 운동 꾸준히 열심히 하고, 무리하지 말고, 잘 먹고, 잘 자고 하는 거다. 그러다보면 어느 순간 괜찮아 지는 날이 있겠지, 하고 마음을 싹 비워 버리는거다. 하긴, 지금의 이 통증은 결국 내가 자초한 거니까, 지금까지 나는 내 자신을 너무 혹사시켜왔거나 방치시켜왔기 때문에 몸 전체가 일종의 반란을 일으킨 거니까, 결국은 전부 다 내 잘못이니까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다. 하여간 이 '참고 기다리는' 연습은 지리하지만, 무슨 일이든 기세 좋게 시작해서 곧 흥미를 잃고 마는 끈기 없는 내 성격을 바꾸는 데도 어쩌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 그나마 희망을 좀 가져본다.
2008년 7월 27일 일요일 아침 아홉시 반 칸사이 공항을 출발하는 비행기편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오늘 비행기 티켓을 예약했다. 10개월여만의 한국이다. 기숙사에는 9월 20일까지 머무를 수 있고 원래 계획했던 것 보다 한달 여나 빠른 귀국이 되어버려서 지금 이 꽃시절을 언제 다시 누려보겠냐 하는 약간의 아쉬움, 남들 이제 방학 시작해서 신나게 어울려 놀러다닐 시기에 나 혼자 한국에 돌아가야 한다는 약간의 억울함, 1년도 아니고 6개월도 아닌, 10개월이라는 어정쩡한 시간 속에서 과연 뭘 배우고 뭘 느꼈나, 그냥 밥만 축냈나 하는 약간의 패배의식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요즘 시절도 하 수상하고 이래 저래 일신상의 문제가 일어나서 - 나이 만 스물둘에 무릎 관절과 꼬리뼈에 이상이 생겨서 이 동네 할머니들과 함께 정형외과 통원치료를 받고 있다 - 조금이라도 일찍 돌아가 제대로 이것 저것 챙기는 게 낫겠다 싶어 과감히 내린 결단이다. 방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청춘 18 티켓을 사들고 이 역 저 역 방황하며 여름의 홋카이도라도 찾아가 볼까 하는 나름 야심찬 계획을 세웠는데 올해 안에는 달성하기 힘들 것 같다. 아무튼, 돌아가는 것이다. 한국으로, 그리고 집으로.
이번 2학기도 휴학할 예정인데, 한국에 돌아가는 건 그렇다 쳐도 집으로 돌아가는 것은 무려 5년만의 일이다. 대학에 입학한 후 집에 머물러 있었던 시간은 길어봤자 한 달이었고, 그 한 달도 일본 오기 전의 한 달이라, 아마 매주 한 두번씩은 서울에 올라갔었기 때문에 정말로 '돌아간 것'이라고는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번엔 정말로 돌아갈 것이고 최소 6개월은 머무를 것이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좋은 가족 구성원'이 되도록 노력할 것이다. 떨어져 살 때는 그저 별 탈 없이 몸 건강히 잘 지내는 것 만으로도 '좋은 가족 구성원'인 척 할 수 있었다. 허나 지금부터는 '진짜로'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사람이 타인에게는 얼마든지 친절해 질 수 있어도 자기랑 가까운 친구라든가 가족이라든가에는 그러기가 쉽지 않은 법이라 많은 어려움이 예상된다 - 아마 그 어려움을 어렴풋하게나마 알고 있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집에 가는 것을 그리 반기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 그래도, 집으로 돌아간다. 집.으.로. 이 세 글자를 힘주어 말하는 것 만으로도 어쩐지 힘이 나는 걸 보니, 은근히 나도 돌아갈 구실 같은걸 찾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약간은 즉흥적인 결단이긴 했지만 어쨌든 돌아가기로 한 건 한 것이고, 예약을 해 놓고 보니 오늘이 귀국 딱 한 달 전이었다. 어이쿠, 아직 텔레비전이야 전기밥솥이야 고타츠 같은 걸 누구에게 주어야 할 지 어떻게 팔아야 할 지도 전혀 결정해놓지 않았고 이제부터 슬슬 살림을 줄여나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자질구레한 세간살이들은 조금씩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오늘, 귀국 첫 준비로 생뚱맞게시리 네 권 세트로 이루어진 '리바이어던' 완역본 문고판을 샀다. 만만찮은 값을 치르는 와중에도 과연 이걸 사야 할 것인가 말아야 할 것인가 심하게 망설였지만, 결국엔 사고야 말았다. 2009년이 오기 까지 나의 목표는 그 리바이어던 완역본을 읽는 것이다. 사실 이런 식의 목표로 사들인 책 몇 권이 지금 거실 여기저기에 굴러다니고 있는데, 나는 벌써 다음엔 '은하철도의 밤'과 '노르웨이의 숲'을 사야지, 이것들은 유명하니까 중고 가게에 가도 있을거야, 하고 '다음의 귀국 준비(?)'를 하고 있다.
#1
나고야에 다녀온 이후로 나는 사진을 찍지 않는다. 아니, 아예 평소 카메라 자체를 들고 다니질 않는다. 학교 근처 헬스클럽에 등록하면서부터(그리고 그 헬스클럽에는 개인 락커룸이 없다) 들고 다녀야 할 짐이 많아지게 되면서, 꼭 필요하지 않는 여러가지 잡동사니들을 가방에서 끄집어내다보니 어쩌다 '꼭 필요하지 않은 여러가지 잡동사니'의 목록에 카메라가 들어갔다. 라고 하는 것은, 이제 이 곳의 생활이 더 이상 나에게 그다지 새롭지 않게 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최근에 부쩍 일본의 미디어나 사회 전반에 대한 복잡한 심정 - 대부분이 비판적인 - 을 토로하는 것도 어쩌면 그 반증인지 모르겠다. 다시 말해 예전에는 마냥 신기하고 흥미롭고 새롭게만 보이던 것들이 이제는 그렇게 보이지 않게 되고, 대신에 예전에는 미처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차츰 보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예전엔 미처 보이지 않았던, 그러나 지금에는 조금씩 보이는 것들이 항상 좋은 것 만은 아니기에 가끔은 화가 치밀어 이놈의 나라, 확 떠 버릴까보다, 하고 생각해버릴 때도 있지만 사실 그러한 발견들도 재미있고 나름의 공부가 되는 것이라 떠나야 할 날짜가 하루 하루 다가오는 것이 아쉽다. 조금만 더 시간이 있다면 이번엔 과연 나에게 무엇이 보이게 될까, 하는 일종의 호기심도 있고, 그런 새로운 발견들에 직면한 나는 앞으로 어떻게 변할 것인가, 역시 이런 것들이 궁금하다.
#2
그럼 내가 현재 가장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무엇인고 하니, 첫째는 <서양 사회 사상사 기초론>이라는 수업에서 매주 나오는 읽을거리들이고 두번째는 자기 자신을 통제하는 일이다. 서양 사회 사상사 기초론이란 수업은 플라톤부터 시작해 아리스토텔레스 - 아우구스티누스 - 토마스 아퀴나스 - 마키아벨리 - 홉스에 이르기까지(홉스 이후부터는 2학기에 계속한다고 한다), 말 그대로 서양 사회의 기초가 되는 사상을 제공한 사상가들의 저작을 일주일에 20페이지 정도 함께 읽어나가는 수업이다. 비록 유학생 대상의 수업은 아니지만 개론 수업이라 그런지 일본어 설명을 알아듣는것도 그리 어렵지 않고(오히려 일본인 교수들의 영어를 알아듣는 것이 훨씬 어렵다) 사상가들의 저작들도 영어로 읽는 것 보다는 일본어로 읽는 편이 이해하기 쉽다. 현재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의 일부분을 읽고 있는데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과 관련되는 부분이라 진행이 좀 더딘 감이 있긴 하지만 즐겁게 읽고 있다.
자기 자신을 통제하는 일이라고 써놓고 보니 뭔가 거창한 일인 것 같지만, 간단히 말하면 될 수 있는한 세 끼 잘 챙겨먹되 채식을 하고,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 학교 가기 전 한 시간 정도 조깅을 하며, 일과가 끝나면 간단한 근력 운동을 하고, 뭐 이런 것들이다. 한 때는 '고기먹는 사람'으로 불리웠던 사람으로서 채식을 결심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으나 - 그래서 비건이나 락토, 락토오보까지는 못가고 세미 베지테리언 정도에 머물고 있다 - 원래가 채소를 그리 싫어하지는 않았던데다 나의 건강과 환경을 위해, 그리고 어떤 의미로는 정치적 대의(?)를 위해 현재까지 두 달 정도 꾸준히 채식을 계속하고 있다. 고기를 끊었다(닭고기는 열심히 먹는다)고 해서 별로 아쉬울 것도 없고 확실히 속은 편해진 느낌이다.
매일 아침 다섯시~여섯시 경에 일어나는 것은 이제 어렵지 않은데 열두시~한 시 사이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자는 버릇을 들이는 것이 의외로 어렵다. 특별히 신경을 쓰지 않으면 딱히 뭔가 하는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냥 두 시를 넘겨버리기가 일쑤다. 그러니까 다시 말해 문제는 깨어있는 시간은 길어졌는데 '딱히 뭔가 하는 일이 있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깨어 있는 동안 학교도 가고 아르바이트도 하고 가끔 공부도 해 주고 운동도 하고 사람들도 만나고 하지만 요즘들어 그런 것들이 그다지 '생산성 있는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나를 좀 우울하게 한다. 이 곳을 떠나기 전에 하다못해 내년 1학기에 쓸 졸업논문의 대략적 구상 정도는 해 놓고 싶다. 이왕 이곳에 왔고 이곳의 말을 배우고 이곳의 생활을 체험하고 있으니까 가능하면 이곳과 관계있는 주제로, 하여간 '생산성을 높이는 일', 이것이 현재 나의 목표라고 할 수 있다.
#3
이렇게 주절주절 늘어놓고 보니 결국 현재 나의 모든 관심은 내 자신에게 쏠려 있는 것이 한 눈에 보인다. 어쩐지 굉장한 에고이스트가 되어버린 기분인데 그렇다고 그러한 기분이 별로 나쁘진 않다. 지금 바로 이 순간이 어쩌면 내 인생에서 내 자신에게 최대한 집중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르니까. 갑자기 술자리에서건 파티에서건 내 얼굴을 잘 못보게 되었다며 걱정을 해 주는 친구도 있지만, 될 수 있는 한 지금은 좀 더 내 자신에 집중하고 싶다. 아무튼 요즘은, 여러가지 고민도 많이 늘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스스로를 돌보는 시간이 즐겁다.
#4
이런 여러가지 상황들을 종합해 보건대, 결국 오늘 일기의 주제는
'고민같은 것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변함없이 건강히 잘 지내고 있습니다'
라는 것이었습니다.
현재 일본 텔레비전에서 가장 인기있는 뉴스거리는 지난 6월 8일 아키하바라에서 일어난 무차별 살인사건이다. 20대의 남자가 2톤트럭을 몰고 보행자용 도로로 돌진, 서바이벌 나이프로 눈에 띄는 대로 사람들을 찔러대 7명이 사망하고 10명 이상이 부상을 입었다. 아무런 잘못도 서로간의 관련도 없는 사람들이 단지 그 자리에 있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죽거나 다쳐야만 했다는 이 충격적인 사실은 일본을 넘어 한국 등 전 세계로 보도되었다.
그런데 정말로 나를 미치도록 괴롭게 하는 것은 아무런 잘못도 없는 사람들 - 설사 잘못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런 일은 있어서는 안 되겠지만 - 이 피해를 입었다는 그 사실보다도, 이 사건을 다루는 일본 미디어들의 보도행태다. 지난 번에도 잠시 말한 적 있지만, 일본의 미디어들은 굉장히 선정적이고 상업적이며, 단적으로 말해 무엇보다 '살인'에 '미쳐'있다. 사건이 일어난 날로부터 나흘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특집편성은 물론이고 아침 점심 저녁 뉴스의 20여분 이상을 이 사건의 보도에 할애하고 있다. 그 보도내용은 더욱 더 경악할 만하다. 사람들이 칼에 찔려 죽거나 부상당하는 장면을 여과없이 내 보내는 것은 기본, 용의자의 얼굴과 이름, 신상명세가 낱낱이 까발려진 것은 당연한 일이고, 사건이 일어난 지 몇 시간 후 부터는 어린 시절 이웃에 살았던 사람들의 증언, 중고등학교 때의 학급문집이며 동급생들 및 당시 담임 선생님과의 인터뷰가 방송되기 시작했고, 용의자가 범행 전 어느 사이트에 휴대전화를 이용해 범행 계획 등을 게시했다는 것이 알려지자 그 내용을 한 줄 한 줄 상세하게 짚어가며 전문가 비전문가를 막론하고 제각각 용의자의 정신상태에 대해 말하기 바쁘다. 어젠가 오늘인가는 - 하도 매일매일 똑같은 내용이 하루종일 보도되다 보니 언제 일이었는지도 가물가물하다 - 용의자의 부모들이 아들의 범행에 대해 사죄한다는 기자회견을 열어 또 한차례 시끄러웠고, 사람들은 범행 동기에 대해 그저께는 '교사가 되고 싶어했지만 꿈을 이루는 데 좌절했다', '최근 회사에서 정리해고 당했다', '여성과 사귀는 것에 문제가 있었다' 등등의 추측에서 시작해서 중학교때의 학급문집에서 어느 게임 캐릭터의 그림이 발견되자 뉴욕까지 가서 미국인들을 대상으로 일본 오타쿠 문화에 대한 인터뷰를 진행하기도 하고, 어제는 '부모에게 문제가 있었다'라고 했다가 오늘은 용의자가 범행계획을 공개한 휴대폰 사이트를 비난하지를 않나, 심지어는 일본의 유토리 교육에 대해 비난하는 시민까지 등장했다. 이러한 내용들이 아침부터 밤까지 계속해서 쉬지 않고 보도되는데, 일본어 공부라도 해 볼까 싶어 TV를 틀어 놓았다가도 일본 미디어의 호들갑에 질려 TV를 꺼버린 것도 여러번, 유감스럽게도 이제는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그들에게 꽃을 바치는 사람들을 보고서도 그들의 진정성을 의심할 지경까지 되었다.
누구나 이 사건에 대해서 한 마디라도 입을 보태고 싶어서 안달들인데, 용의자가 범행 전 올린 여러 게시물 중 자신의 꿈이 '와이드쇼 독점'이라는 말이 분명히 쓰여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선정적이기 짝이 없는 범행을 확대 재생산하고 잠재적 용의자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일본 미디어의 보도행태나 그 책임론을 지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사건 발생 몇 시간 만에 중고등학교 시절 문집이며 동급생이며 어린시절 이웃들을 만나 취재할 정도의 행동력을 가진 일본 미디어들이 어째서 국내에서 일어나는 정치적 현안들 - 예를 들어 도쿄에서 노동권을 보장하라는 시위가 일어난다고 해도 절대로 뉴스에는 나오지 않을 것이다 - 에는 왜 그렇게 눈을 감고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는지, 이웃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대규모 시위를 보도하는 데는 왜 한 달씩이나 걸렸는지, 이 소동을 잠재울 수 있는 것은 오직 한 가지, 또 다른 살인사건 뿐이 아닐지, 뭐 이런 것들을 생각하면 얼른 이 나라를 떠나고 싶은 마음 뿐이다.

오랫동안 격조하였습니다. 생존신고 합니다.
학기가 시작되고 그동안 조금 바빴습니다. 바쁜 와중에도 일본의 골든위크를 맞아, 2박 3일간 짧게 나고야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나름 고생도 많이 했지만 그만큼 즐거운 추억이 되었습니다. 지금으로서는 언제가 될 지 기약할 수는 없지만 아무튼 사진과 함께 여행기를 써 볼까 합니다.
그러면 다시 인사 드리겠습니다. 건강하세요.
長らくご無沙汰しました。「生存届け」をします。
学期が始まってから忙しいでした。勿論忙しいところにも日本のゴールデンウィークを向かえ、2泊3日間短く名古屋に行って来ました。しんどいこともありましたがそのおかげでもっと楽しい思い出になったと思います。ただいまのところ期することができませんがとにかく時間の許す限り写真を添付して旅行記を書いてみようかと思っています。
ではまた。お気を付けて下さ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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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계셔서 놀랐습니다. 저는 최근에 홋카이도에 세번째로 다녀왔습니다. 큐슈나 오키나와에도 갈 수 있었지만.. 삿포로가 일본에서의 제 고향이라는 생각과 그리움을 못 이겨 기어코 홋카이도를 고집했지요. 그나저나 요새 위성방송으로 NHK 일기예보를 보니 쿄토 기온이 37도던데.. 더위 잘 극복하시고 즐거운 여행 하고 오시길 바랍니다. :)
2010/07/26 10:18이거 왜 이렇게 슬프니;;; 무사히 다녀오렴! 갈 수 있을거야!
2010/07/26 12:07물리적 거리 때문에 글 좀 꼬박꼬박 쓰라는 말씀(보다는 그 뒤에 이어질 행위)은 하기 힘들 것 같고, 잘 다녀오세요. 예전에 유치환 시인의 '깃발'이었나를 인용하신 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 '열사의 도시'란 문구를 보고 나니 전반적인 내용이 왠지 생명의 서처럼 느껴지네요.
2010/07/26 17: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