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 1년만에 극장에서 본 영화였다. 지루하다, 고는 말할 수 없었지만 그저 그렇게 흘러가다가, 마지막에 가서 큰 울림을 주는 영화였다. 이것을 뭐라 설명할 길이 없어(요즘 글을 안 쓰는 탓인지 자꾸 글을 쓰기가 점점 힘들어 진다) 예전에 썼던 일기를 붙이는 것으로 대신 하려 한다.
원래부터가 호흡 짧은 글에 익숙지 않은 사람인 나는 - 그래서 평소 본인은 내 글을 두고 무성영화 상영관에서 등장할 법한 변사들의 흐드러진 말솜씨같다고 생각해왔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 아무리 노력해도 시나 가사나 뭐 그런 것들을 써낼 수 없다. 대학생활 4년이 지나도록 내가 가지고 있는 시집은 달랑 네 권. 그 중에 세 권은 수업때문에 구입한 하이네 시집 한 권과 유하 시집 두 권이고, 나머지 하나는 작년 여름 박병장(이제는 박예비역) 면회하러 갔다 얼떨결에 받아버린 생일선물이었다. 그나마도 지금 그 네 권의 시집은 나로부터 멀리 떨어져있다. 아마도 이젠 창고로 쓰이고 있는 대구의 내 방 어딘가에서 보얀 먼지를 뒤집어 쓴 채로 숨죽이고 있을 것이다. 짐작컨대, 우리집 식구들 중 누군가가 시집을 읽는 모습을 본 기억이 한 번도 없었던 것으로 미루어보아 앞으로도 그 시집들은 한동안 거기 있을 것이다. 어째서 나는 이리도 시를 홀대하는가. 어쩌면 내 몸속에 흐르고 있는 피 자체가 시 같은 것과는 별로 친하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시를 좋아하고 잘 쓰는건 일종의 유전자에 새겨진 각인같은 무엇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아, 이건 너무 궁색한 변명이었나.
각설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내 머리와 심장께에서 펑펑 솟아나고 있는, 수채구멍의 구정물색같은 오욕번뇌 - 나는 이 말이 참 마음에 든다. 달리 무슨 말을 쓸 수 있겠는가 - 들은 평소 내게 익숙한 줄글 같은 걸로는 도저히 전부 표현해 낼 수 없을것만 같다. 지금이야말로 시가 필요한 그 때인 것이다. 혹 되먹지 않은 실력으로 섣불리 그것들을 밖으로 끄집어내어 주저리주저리 읊어댔다간 그것들은 순간 원래의 것보다 훨씬 번잡스러운 무엇이 되어, 그렇지 않아도 변변찮은 나 자신을 더욱 부끄럽게 만들고야 말 것이다. 그래서 나는 시를 즐겨 읽지도 않는 주제에 시를 찬양할 수 밖에 없다. 시가 나의 쓰잘데 없는 감정들에 대한 뒤치닥거리에 유용할 것만 같아서 그런 것은 절대로 아니다. 오히려 나는 시가 가진 절대적인 힘 - 어떤 것이라도 그것의 본질과 나름의 아름다운 면을 끄집어 낼 수 있는 통찰력 - 을 인정하고, 감탄마저 하고 있다. 허나 어쩌랴. 나는 시를 지을 수도 없는 사람인 것을. 이미 나의 피가 시를 거부하고 있는지도 모르는데.
- 百万円溜めて転々としてるんです。 最初、友達と3人でルームシェアする予定が、 急に1人がダメになって2人で住まなくてはいけなくなって… で、私小猫を拾ったんですけど、それを同居人が勝手に捨てちゃって、 私頭にきて、それでその人の持ち物を全部捨てたんです。 そうしたら…け…刑事… 백만엔을 모으면서 전전하고 있어요. 원래 친구랑 셋이서 방을 나눠쓸 예정이었는데, 갑자기 한명이 못하게 되어서 두명이서 살지 않으면 안 되었는데... 그런데, 제가 새끼고양이를 주웠는데, 그걸 같이 사는 사람이 맘대로 버려버려서, 열 받아서, 그래서 그 사람 물건을 전부 버렸어요. 그랬더니....혀...형사...
- 刑事? 형사?
- 刑事告訴されたんです。 형사고소당했어요.
- 本当ですか? 정말인가요?
- … それで…自家にもいづらくなって、 で、最初は海の家で働いて、それから山にいて、 百万円溜まったからそれで今回ここに来たんですけど。 … 그래서...집에서도 있기 힘들어져서 그래서, 처음에는 바닷가 마을에서 일하고, 그 다음엔 산속에 있다가 백만엔이 모여서 이번에는 여기에 왔어요.
- 自分探しみたいなことですか。 자아찾기같은 건가요?
- いや…むしろ探したくないんです。 どうやったって…自分の行動で自分は生きていかなきゃいけないんですから… 探さなくたって、いやでもここにいますから… 逃げてるん…です。 아니...오히려 찾고싶지 않아요. 어쨌든...자기의 행동으로 살아가지 않으면 안되니까... 찾지 않아도, 싫어도 여기에 있으니까... 도망치고...있어요.
- 何かに追われてるん…ですか。 어떤것에 쫓기고...있나요?
- いや、そうじゃなくて… どこにいても所在がなくて、いっそ自分のことを知ってる人が1人もいない中で 暮らしてみたいと思ったことはないですか。 아니, 그게 아니라... 어디에 있어도 있을 곳이 없어서, 차라리 자기를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데서 살아보고 싶다고 생각한 적 있지 않나요.
- あ…ありますね。 이..있죠.
- そ・・・で、その知らない土地に行って、 もちろん最初はだれも私のことを知らないんですけど、 だんだん知られてきて…そうすると…面倒なことに巻きこまれて… 百万円あればとりあえず家も借りれて、 次のバイトが見つかるまでのつなぎにもなって… だから百万円溜めてば転々としてるんです。 그....그래서, 알지 못하는 곳에 가서, 물론 처음엔 누구도 저를 알지 못했는데, 점점 알게 되어서...그랬더니...귀찮은 일에 휘말려서... 백만엔이 있으면 우선 방도 빌릴 수 있고, 다음 아르바이트를 찾을 때 까지 버틸 수 있으니까... 그래서 백만엔이 모이면 전전하고 있는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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拓也へ 타쿠야에게
今まで手紙出さなくてごめん。 姉ちゃんは元気に生きています。 지금까지 편지 쓰지 않아서 미안해. 누나는 건강하게 살아가고 있어.
姉ちゃんは自分のことをもっと強い人間だと思っていました。 でもそうじゃありませんでした。 家族でも、恋人でも、 長く一緒にいられるコツって、 一番大事なことは言わないでいることなんじゃないかなって思っていました。 おとなしく、適当にうそ笑いをしていたらトラブルのなく過ごせると思っていました。 いつの間にか何も言えない関係になってしまうのは、 不幸なことです。 누나는 자신을 좀 더 강한 인간이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그렇지 않았어. 가족도, 연인도, 오랫동안 함께 있을 수 있는 요령이란, 제일 중요한 건 말 하지 않는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어. 얌전히, 적당히 거짓웃음을 짓고 있으면 트러블 없이 지낼 수 있을거라 생각했어. 어느샌가 아무것도 말할 수 없는 관계가 되어버리는건 불행한 일이야.
人は出会ったら必ず別れるのだと思います。 その別れが怖いから、 姉ちゃんは無理をしていました。 사람은 만나면 반드시 헤어지는 거라 생각해. 그 헤어짐이 무서워서, 누나는 무리하고 있었어.
でも、出会うために別れるのだと、 今気づきました。 好きな人と別れしたって、 ちっとも泣くようなことじゃないって思いました。 하지만, 만나기 위해서 헤어지는 거라고, 지금 깨달았어. 좋아하는 사람과 헤어진다는 것, 조금도 울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
姉ちゃんに言われて説得力ないと思いますが、 拓也は悪くないよ。 本当に偉いよ。 누나가 말하는 게 설득력 없을지도 모르지만, 타쿠야는 나쁘지 않아. 정말로 훌륭해.
姉ちゃんは色んな人から逃げてきましたが、 今度こそ、 次の町で、ちゃんと自分の足で立って生きていこうと思います。 拓也に勇気付けられました。 ありがとう。 누나는 여러 사람들로부터 도망쳐 왔지만, 이번에야말로, 다음 마을에서, 제대로 자기의 다리로 서서 살아가자고 다짐했어. 타쿠야에게 용기를 얻었어. 고마워.
대학원에서 첫 학기를 보내는 동안 줄곧, 고민할 필요도 없이, 생각할 필요도 없이, 일본의 어딘가 작은 도시에 숨어 들어가 편의점이든 할인마트든 딱 자기가 한 달 먹고 살 수 있을 정도의 단순노동이나 하면서 살고 싶다는 것이 내 입버릇이었다.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대학원의 하루하루는 힘이 들어서, 외로워서,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었고 하루 하루를 근근이 버텨나가고 있다는 생각 뿐이었으니까. 특히나 내 주변의 사람들은 내가 버틸 수 있는 힘이 되어주기도 했지만 동시에 버거운 짐이기도 했다. 사람들과의 관계를 맺으면 맺을수록 과도하게 에너지를 소비해버리는 나에게는, 차라리 자기 자신만을 생각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늘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내 모습을 규정하는 나에게는 내 모습을 내보인다는 게 무척이나 숨막히는 일이었으니까. 사람들에게 기대면 기댈수록 동시에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건 참으로 모순되는 일이었지만 - 그 모순 때문에 더욱 힘들어져 자기 자신에게 파고 들면서 스스로를 괴롭혀왔는지도 모르겠다.
일본에 가고 싶어하는 것도 그런 맥락이었는지 모른다. 적어도 일본에 있는 동안은, 나를 위해 아무것도 준비되어 있지 않은 곳에서, 복잡한 생각따윈 저 멀리 제쳐두고, 일단은 하루 하루를 살아나가기 위해 제로에서부터 차곡차곡 뭔가를 쌓아올리는 데 집중할 수 있었으니까. 물론 일 년 정도를 그 곳에서 지내다 보니 거기에서도 나름대로의 관계가 형성되어 다시금 한국으로 돌아오고 싶어했던 것도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처음 그 몇 달 간의 기억이 너무나도 강렬해 지금도 나는 일본에 대한 향수병을 앓고 있는 것이다. 일본이든 아니든 실은 별 상관 없겠지만.
그리하여, 누군가는 이런 나에게 애정결핍이란 진단을 내렸고 또 누군가는 나에게 좀 더 열심히 공부하라는 처방을 내렸지만, 여전히 내 마음은 진정되지 않은 채로, 일주일 씩이나 다시금 좁은 내 자취방에 틀어박혀 사람들과의 관계를 거부하고 있다. 마치 일년 치의 잠을 몰아서 자기라도 하는 양 자다가 깨다가, 또 자다가 깨다가를 반복하면서. 깨어있는 그 잠시 동안 몽롱한 의식 속에서 타인에게 버림받거나 평가당하거나 하는 걸 무서워하기 때문에 나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숨막혀하는 게 아닐까, 아니면 나는 지금 나에게 수고로움을 끼치는 일들을 피하고 싶어서 내 자신의 게으름을 정당화 하고 있는 건 아닐까, 만일 그렇다면 나는 단지 비겁할 뿐이다, 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만일 그렇다면 - 설령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 도망쳐서는 안된다, 고도 생각했다. 아니, 아예 도망치는 것 따윈 애초에 허락되지 않았다, 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더 이상 도망칠 수는 없다, 는 것이 정답일 것이다. 당장 내일부터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나 아르바이트를 하고 회의에 참석하는 일상을 이어 나갈테니.
대학원에 다닐 정도의 재능이란게 나에게 있을까요, 그냥 뭐든지 다 관둬버리고 싶어요, 라고 푸념하는 내게 뭐 그렇게 복잡하게 사니, 재능이란 게 거창한 것이 아니고 결국은 견디어 내는 능력이 곧 재능이래, 그러니까 좀 더 해봐, 라는 연구실 언니의 말이 생각난다. 도망쳐서는 안된다, 도망칠 수 없다, 도망치지 않아도 된다, 라는 말이 계속 입속에서 맴돈다.
논문 드래프트 발표를 마치고 혼자 <마더>를 보러갔다. 봉준호 감독의 열렬한 팬은 아니지만 어쩌다보니 <플란더스의 개>와 <도쿄>를 제외한 봉감독의 모든 영화를 영화관에서 본 셈이 되었다. 하긴, 워낙에 화제작들이고 많은 사람들이 본 영화들이었으니 특별하게 내세울 일도 아니다. 이번 영화 역시 반쯤 정도는 봉감독에 대한 기대감으로 또 반쯤 정도는 이걸 안보면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이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보러 간거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괴물>만큼 흥행에 성공할 것 같지는 않은 영화였다. 영화를 보고 나가는 사람들의 대화나 표정에서 어딘지 모를 '찝찝함'이 묻어났던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오히려 그 '찝찝함'이 묘한 상쾌함으로 다가왔다. 아마도 이 영화가 몇 주 전의 내 자신을 계속해서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었을거다.
그 문제의 '몇 주 전', 끝이 보이지 않는 폭식과 그에 따른 강박적인 보상행동으로 인해 내 몸과 마음은 무척이나 지쳐서 그 어둡고 억압된 기운을 남들이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였다. 나는 그 모든 일의 원인을 내 자신이 아닌 밖에서부터 찾으려고 했었던 것 같다. 내가 이렇게 먹는 일로 내 심리적 공허감을 채우려고 하는 건 어릴 적부터 내게 짐 지워진 과도한 책임감이나 어른스러운(혹은 어른스러워져야만 한다는)이미지 때문이야, 하는 생각에, 가족들을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무관심이라 착각할 정도로 무뚝뚝했던 아빠와, 아빠가 주지 않는 감정과 역할의 공백을 메꾸기 위해 배로 노력해야만 했기에 필요 이상의 스트레스에 늘 시달려오셨고 급기야는 그로 인한 각종 신체징후들까지 보이고 계시는 엄마와, 그리고 아직까지 철없고 어리다는 이유로 조금 복잡하다 싶은 가족사에 대해서는 알지도 못하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 동생들을 나는 내 자신의 인생을 더욱 앞으로 뻗어나가지 못하게 꽁꽁 묶어놓는 족쇄인양 여겼을지도 모른다. 특히나 아빠께서 집에 거의 안 계시는 상황에서 엄마의 과도한 스트레스는 장녀인 내가 상당 부분 나누어 짊어져야 하는 것이었기에, 나는 엄마에게 애착을 가지는 만큼이나 내 무의식 한 켠에서 또한 엄마를 미워했던 것 같기도 하다. 생각해 보면 엄마나 나나 지독히 외로웠다. 우리는 둘 다 자신의 감정을 남에게 내보이고 내가 지고 있는 책임을 남과 나누는 데 무척이나 서투른 사람들이니까. 그러나 그 서투름을 애써 바꾸려고도 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것이 타인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면서도 스스로의 긍지를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양 생각했다.
결국 고인 물은 썩고 썩은 상처는 곪으며 곪은 상처가 그러하듯 일은 갑자기 터지고야 말았다. 어느 일요일 오후, 그날도 나는 배가 터질 때 까지 잔뜩 먹고는 스스로를 절제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자괴감과 자기혐오에 빠져 있었다. 그 때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평소 같았으면 거짓말로라도 '여긴 아무 일 없고 나는 잘 있다'고 말하며 통화를 마쳤을 텐데, 그 날 따라 도저히 그럴 기분이 들지 않았다. 내 입에서 나도 모르게 '엄마의 딸은 지금 폭식증 때문에 학교에서 상담치료를 받고 있으며, 상담을 몇 번 받아본 결과 상담 선생님께서 그 폭식증의 원인이 아주 옛날부터 느껴야 했던, 가족에 대한 필요 이상의 책임감에 있을 수도 있다는 말씀을 하셨다'는 말이 튀어나왔다. 엄마에게서 사과나 위로를 받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엄마는 딸의 투정에 덮어놓고 오냐오냐 해 주실 분이 아니었다. 엄마는 내가 받고 있는 상담을 정신과 치료와 착각하셨던지, 누구나 부러워하는 큰딸이 스스로를 어쩌지 못해 남의 도움에 기대고 있다는 사실을 수치스럽게 여기셨다. 내가 그렇게 부끄러워? 하는 말로 다툼이 시작되었고, 나는 한 시간이 넘게 소리치고 울부짖으며 엄마에게 그 당시 내 마음 속에 있었던 말들을, 다소 잔인하다 싶을 정도까지 모두 다 퍼 부었다. 그리고 소강상태는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나의 유약함과 책임회피를 꾸짖던 엄마는 어느 순간부터 모든 것이 다 잘될거라고 나를 격려해 주고 계셨고, 그 말을 들으면서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엄마에게 어리광을 부리고 떼를 써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마음 속이 한결 편안해 졌다. 모든 것은 원만히 잘 해결되었다고, 외려 상황이 이전보다 더욱 나아졌다고까지 생각했다.
그러나 며칠 전 엄마가 뇌졸중 때문에 쓰러져 중환자실에 입원했다는 것, 행여 내게 부담을 줄까봐 엄마는 엄마의 입원 소식이 내게 전해지지 않도록 철저히 가족들 입단속을 시켰다는 것, 그래서 엄마가 입원한 지 일주일이 다 되도록 나 혼자만 그 사실을 까맣게 몰랐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모든 것이 괜찮아졌다는, 더 나아졌다는 생각은 내 착각이었음이 밝혀졌다. 생각해 보면 괜찮을 리가 없을 터인데. 엄마는 무쇠인간이 아니라는 것은 이미 예전부터 알고 있었던 거였는데. 내가 느끼고 받는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엄마도 책임감을 느끼고, 엄마도 위로받고 싶고, 엄마도 상처 입고, 그래서 엄마도 아픈 것은 당연한 건데. 여자는 약하나 어머니는 강하다고? 애초에 그건 내가 가장 싫어하는 말 중 하나였다. 어머니가 되어버리는 순간 여성성이라거나 욕망이라거나 하는 모든 것들이 박탈된 채 그저 신과 같은 숭고하고 무조건적인 사랑만이 강조되는 것이 싫었다. 그렇지 않으면 마치 사회의 잉여인간처럼 여겨지는 것은 더더욱 싫었다. 다들 그렇게 생각해서야, '어머니'라는 말에서 떠올리는 이미지의 속성이 '아줌마'라는 말에 담긴 경멸과 멸시의 뜻과 무엇이 다른가 말이다. 신은 어디에나 있어줄 수 없기 때문에 어머니를 대신 세상에 내려 보내셨다는 말도 웃기다. 어머니는 신이 아니다. 어머니도 사람이다. 나나 어머니나 결국 똑같은 사람인 것이다 - 그러나 나는 이렇게 잘난 체 하며 남들에게 는 잘도 지껄여대면서도, 지금껏 나도 모르는 사이 다른 사람도 아닌 우리 엄마에게 완벽한 신의 이미지를 투사하고 그러한 이미지에 맞춰 나에게 뭔가 해 주기를 계속 요구해왔다. 아니,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도 모르는 사이'라는 말은 변명이다. 나는 이미 표리부동한 내 자신을, 그리고 이 못난 딸자식 때문에 힘들어하는 엄마를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알고 있으면서도 모른체 했다. 나 하나 편하자고.
하여튼 제목에 영화 이름을 붙였으니 다시 영화 이야기로 돌아가자 - 나에게 누가 누구를 죽였고 반전이 뭐고 하는 것이라든가, 봉준호 감독의 전작에서부터 꾸준히 나오던, 탁치니 억하고 죽더라는 식의 권력기관의 횡포, 있는 놈에게 비굴하게 없는 놈에게 가혹하게 돌아가는 세상에 대한 풍자 따위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내게 흥미있는 것은 엔딩 크레딧에서조차 끝끝내 이름 한 줄 나오지 못한 '도준 모' 김혜자씨의, 얼핏 보면 맹목적이고 신성하며 숭고하게까지 보이는 모성애의 정체는 결국 자신의 마음 한 구석에 늘상 박아두었던 죄책감과 부채감에 다름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아아, 비록 이름도 여성성도 욕망도 모두 박탈당했지만 결국 '마더'는 신이 아니었구나 하고 나는 안도했다. 내가 두 시간동안 봐 왔던 인물은 결국 그 테두리를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었지만 '어머니'라는 단어 하나만으로 설명될 수 있고 정의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나처럼, 나의 엄마처럼 괴로워 하는 상처받고 나약한 한 인간이었던 거다. 그러한 인간을 '어머니'라는 단어 속에서 끄집어 내어 그려내 주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봉준호 감독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다.
지금 내가 읽고 있는 책 <치유하는 글쓰기: 발설하라, 꿈틀대는 내면을, 가감없이>에서 저자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우리는 모두 미숙하다. 고통과 상처 때문에 성장을 멈춘 내면의 어린이이자 존재하는 이상 때때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향해, 사랑하기 때문에 그러는 것이라고 외치면서 칼을 휘두르고 화살을 쏘아댄다. 그래서 우리의 자식들도 수치심과 분노와 피해의식으로 얼룩진 내면의 어린아이를 만들어내면서 성장하게 된다...(중략)...그런 점에서 우리 내면은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을 잃어버린 아이들로 꽉 찬 고아원이다. 대부분 가족, 그중에서도 부모가 그 많은 고아를 만들어주었으며, 가해자는 부모 속에 숨어 있던 내면의 아이들이다. 그러니까 성인이 되어 물리적인 힘만 세진 부모의 내면아이들이 분노의 주먹을 자신의 아이들에게 휘두른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부모가 자식들에게 휘두르는 유형무형의 폭력 만큼이나 자식 역시 부모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무리한 역할을 강요하며 충분히 서로를 상처입히며 살아간다. 그리고는 서로가 서로를 이해해주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이기적이라고 비난하며, 때로는 혼자서 멋대로 괜찮다고 생각해버리기도 한다. 그것이 결국에는 상대가 아닌 자기 자신을 상처입히는 길인데도 말이다. 그러니 우리 조금만 더 서로에게 관대해 지자. 그리고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자. 어머니와 자식도 아니고, 어른과 아이도 아니고, 바보와 안바보도 아닌 그냥 인간 대 인간으로서. 적어도 지금의 나에게는 그런 훈련이 필요하다.
배우의 주걱턱이나 전체적으로 가지런히 정리된 가운데 묘하게 한 군데만 삐져나온 머리스타일 같은 것이 영화를 보는 내내 신경쓰일 때가 있다. 그리고 대개 그럴 때는 영화의 전체적인 전개나 맥락보다는 그런 특정한 기억의 파편들이 가장 강하게 기억에 남는 법이다. 아니, 어쩌면 우리가 '전체를 파악하고 있다'거나 '맥락을 이해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큰 착각일지도 모르겠다. 곱씹어 보면, 기억속에 남아 있는 사건들은 인상깊은 부분들일 따름이고 그 덩어리 덩어리들을 내 나름대로 해석하여 짜맞추어 만들어진 결과물이 '맥락'이니 '흐름'이니 하는 것들인 것이다.
잘 알지도 못하는 인지론이 어쩌고 저쩌고 하고 이야기를 계속 할 생각은 없다. 허나 '머리와 꼬리가 없는' 도시 파리에서의, '꼬리따윈 몇만 년 전에 일찌감치 퇴화해 버리고 없는' 인간들의 '머리도 꼬리도 없는' 다양한 삶의 모습들을 보고 있자면 인간의 기억이 어쩌고 뇌가 어쩌고 하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지기도 한다. 애초에 '우리'라는 것이 그렇고, '가족'이라는 것이 그렇고, '한국인'이라거나 '파리지엥' 하고 지칭하는 것들이 그렇고, '지구촌'이라고 하는 것들이 그러하다. 순간 순간에 벌어지는 사건들의 연속일 따름인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어디에서부터 어디까지를 금 그어놓고 나, 혹은 우리, 라 부르고 가족, 이라 부르고, 한국인 또는 파리지엥, 이라 부르고 지구촌, 이라 부른다. 그리고 나서 불평한다. '아무도 자기가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 고. 당연하지 않은가. 대개 그러한 불평을 할 때 우리는 타인을 어떠한 전체 중 일부로 뭉뚱그려 생각하는 반면 자신은 그러한 전체에서 외따로 떨어져 나온 고독한 섬처럼 생각하지만 실은 그 비판의 대상이 되는 타인도 고독한 자신의 처지와 별반 다를 게 없을 테니까. '그것이 바로 파리인 거죠!', 그리고 그것이 바로 내가 살아가고 이 세상을 인식하는 하나의 방식인 거다.
아참, 이 영화엔 머리와 꼬리가 없을 뿐 아니라 애석하게도 '사랑',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로맨스' 역시 '별로' 없다. 배급사에서는 이 영화를 마치 '파리판 러브 액추얼리' 정도로 홍보하고 싶어하는 것 같던데, 실제로 이 영화는 그다지 '사랑을 부르'지 않으므로 혹여 그런 걸 기대하고 데이트 용으로 이 영화를 골랐다간 자칫 실망할 수도 있으니 조심하시길. 참고로 네이버 영화 데이터베이스에는 이 영화가 멜로, 애정, 로맨스, 드라마, 코미디로 분류되어 있다.
조용하다, 너무도... 그래도, 세상이 돌아가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 은색 구두를 돌려받은 나는 고등학생때, 학원제에서 연기한 도로시 같다. "나를 엠 숙모가 있는 캔자스로 돌려보내줘" 발뒤꿈치를 세 번 부딪히면 어디로 돌아가는 것일까. 아마도... 아무데도 가지 않을거다. 나는 신에게 있을 장소를 선택받기 위하여 약을 먹었다. 그리고, 겨우 콰이어트 룸에 도착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최고로 귀찮은 여자가 착지해야 하는 올바른 장소에 그냥 있는거다. 어서와, 콰이어트 룸에. 나는, 나는, 그리고,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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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간 노력해서 겨우 만들어 놓은 긍정적인 자아상이나 마인드 컨트롤 같은 건 단 한번의 폭식으로 간단하게, 그리고 허망하게 무너져 내렸다. 심한 자책, 반성, 후회를 딛고 이런것 쯤 살다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자신을 달래기까지는 시간이 좀 필요했다. 그렇게 마음을 조금 추스린 후에, 주변의 몇몇 사람들에게 나의 폭식증에 대해 이야기했다. 어떤 이들은 조금은 놀라고 조금은 이해 못하는 표정을 지었으며 어떤 이들은 나를 비난하고 싶어하는 눈치였지만 또 어떤 이들은 나와 비슷한 고민을 가지고 있고 나를 이해해 주었다.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그런 사람들이 나의 기분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다는 그 가능성 하나만으로도 꽤나 위로받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상담을 받았다. 선생님이 물었다. 지금 이 질문을 꼭 해야만 할 것 같은데, 민욱씨는 지금까지 살면서, 아무 생각 없이 그냥 편히 쉬어본 적이 몇 번이나 있었나요?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딱히 의식을 해 본 적은 없지만, 나는 '다음에 내가 해야만 하는 일'에 대해 생각하지 않은 상태에서 편히 쉬어본 적이 단 한번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이다. 일본에 있었을 당시 내가 가장 자주 즐겨쓰던 표현이 '~しなければならない', 다시 말해 '~ 하지 않으면 안돼' 였음도 그 순간 '깨치게' 되었다. 그리고 현재 내가 하고 있는 긍정적인 사고를 위한 노력도 어쩌면 방향만 다를 뿐, 다시금 나에게 일종의 강박으로 작용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하여 상담을 마치고 나오면서, '상담을 기점으로 일주일이 리셋되는 기분이 들어요'라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정말로 다시금 리셋하는 심정으로 지금 이후의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당장은 손바닥 뒤집듯 모든 상황이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여전히 스트레스를 받고 게으름을 피우면서도 다음 해야만 하는 일들이 머리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아스카가 병원을 나서며 모두의 인사와 메일주소가 적힌 종이를 버린다고 해서 병원에 있었던 시간들을, 그녀의 과거를 부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내가 가지고 있는 문제들까지 같이 버려지지는 않듯, 그래서 퇴원하고서도 다시 그 병원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있듯이 말이다. 그래도 좋다. 적어도 그날 하루, 아니 그 순간만큼은 깨끗이 정리하고 새로운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면.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아깝지 않은가, 나의 시간들이, 또한 불쌍하지 않은가, 지금껏 단 한번의 쉼 없이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왔던 내 자신이.
덧1. 영화의 한 장면, 아스카의 댄스 레크리에이션 데뷔. 더 피넛츠의 '사랑의 푸가'를 편곡했는데, 꽤나 마음에 든다.
초록색 옷을 입고 머리를 휘날리며 뛰어갔다면 아마 지난 주 금요일 쯤이겠네요. 오빠도 저도 이제 부인할 수 없는 복학생 -ㅅ-;; 어머니께 상담받는 걸 말씀드렸더니 정신병원 이미지를 연상하셨던 듯 적잖이 충격을 받으신 모양이지만 그래도 저는 몇 번의 상담을 받아본 결과 별로 나쁘지 않았아요 - 그나저나 말씀하신 건 17동의 카페 '이야기'인가요? 저도 한 번 가봤는데 학교와는 조금 다른 분위기가 나쁘지 않더라구요 ^^ 네, 커피 한 잔 사 주세요. 거기 곡물스콘이 맛있다던데 스콘은 제가 살게요!
* 지난 주부터 매일매일 자기 치료의 일환으로 <폭식일기>란 걸 쓴다. 음식을 먹기 전 상황, 무엇을 먹었는지, 그리고 먹고 나서의 느낌을 기록하는 것이다. 원래는 상담 선생님 이외에는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지만 오늘은 용기를 내어 일기의 일부분을 포스팅한다.
마음씨 좋은 - 혹은 학생들에게 약한, 혹은 둘 다인 - 주기평 선생님은 오늘의 <중국 명작의 이해> 수업을 쉬게 해 주셨다. 덕분에 오늘은 학교 갈 이유가 없어졌다. 학교에 가지 않는 날은 폭식의 위험이 커진다(물론 학교에서도 폭식을 한다). 어쩐지 불안했던 마음은 오늘도 적중했다. 어제는 잘 참았던 폭식증이 도졌다. 두어 시간만에, '마치 악령에라도 홀린 듯이' 배가 터질 때 까지 빵을 허겁지겁 먹어치웠다. 토하고도 싶었지만 길에다 토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어차피 토해봤자 몸만 상할 뿐 정작 먹은 양의 한 주먹 정도도 게워내지 못한다는 것을 이미 몇 번의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기에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다. 자책을 넘어서 경멸의 심정을 느끼고, 후회하고, 다시금 감정적인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최근 학교에서의 상담을 통해 무언가의 스트레스 요인이 폭식을 유발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아직 그 요인이 무엇인지 뚜렷하게 밝혀지진 않았다. 그저 아주 오랜 기간동안 내 자신이 만성적인 스트레스에 시달려 왔고 스스로 생각한 것과는 달리 나는 그 스트레스를 잘 다루어 온 대신 그저 억눌러 왔으며 최근 그것이 뻥 하고 터져버린 것 같다는 짐작만 대충 할 수 있을 뿐이다.
모처럼 얻은 한가한 - 실제로는 별로 한가하진 않지만 눈 앞에 쌓여있는 산더미 같은 일들을 애써 외면하며 - 시간을 이렇게 보내버리기엔 너무 아깝다는 생각에, 먹는 것이 그러했듯 또한 충동적으로 영화를 예매하고 광화문 스폰지 하우스로 향했다. 먹은 것을 소화시키려 녹두에서 구로디지털단지역까지 걸어가서 지하철을 탔음에도 불구하고 영화 상영 한 시간 전에 도착했다. 스폰지 하우스 한 구석에 진열되어 있는 DVD를 뒤적이다 <콰이어트 룸에서 만나요> 케이스를 발견했다. '스트레스', '거식증' 따위의 단어가 눈에 들어오자 갑자기 눈물이 찔끔 났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특정 단어에 그만 민감하게 반응해 버린 것이다. 화장실에 갔다가, 편의점에서 물 두 통을 사고, 주변을 느릿느릿하게 걸으며 감정을 추스른 뒤 다시 영화관에 들어갔다.
두 시간여의 상영이 끝난 후, 다시금 걷고 또 걸었다. 구로디지털단지역에서 신대방역으로, 신대방역에서 신림역으로, 신림역에서 쑥고개로, 쑥고개에서 서울대입구역으로, 서울대입구역에서 학교로, 학교에서 다시금 녹두로 - 그 만만치 않은 거리를 걸어오면서 나는 무슨 생각을 했던가. 영화 생각을 했다. 꽤 괜찮은 소재에 비해 두 배우가 갖는 장점을 잘 살려내지 못한 연출과 각본의 미숙함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고 생각했다. 그리고 조금 먼 길을 돌아갔지만 결국에는 '지금, 이대로'를 좋아하게 된 그녀들이 부럽다, 고 생각했다. 그에 비해 나 자신은 지금 현재의 나에게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에 괴로워하고 있으니까. 갑자기 내 자신이 좀 불쌍하다, 고 생각했다. 너는 지금까지 혼자 이렇게 발버둥쳐 왔구나, 할 수만 있다면 내 자신을 꼭 안아주고 싶다, 고 생각했다. 물론 내 곁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그렇게 할 수 있는 건 결국 내 자신 밖에 없다, 고 생각했다.
요즘은 시간이 흐르는 것이 두렵다고 느끼면서도 한 편으로는 오늘이 얼른 지나갔으면 하고 바라는 일이 많아졌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러면 그럴 수록 시간은 더디게 가고 내가 감당해야 할 여러 가지 것들의 무게들은 더욱 선명하게 느껴진다. 결국 A에서 B를 건너뛰고 C로 갈 수 없는 것이 인생이라면 인생인 거다. B를 직시하고 온 몸으로 맞이하는 것은 힘들고 외로우며 또한 괴롭다. C가 멋진 모습으로 다가오기를 바라는 때는 더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괴롭더라도 B의 시간을 충실히 보내고 나서야 C의 시간이 멋진 모습으로 찾아올 터다. 그리고 그 때의 나는 조금은 그 때 그대로의 모습을 좋아하게 될 지도 모른다.
ーね、ミドリさん、 もし明日世界が終わっちゃうとしたら 最後に何したいんですか? 저기, 미도리씨, 만일 내일 세상이 멸망해버린다면 마지막으로 뭘 하고싶어요?
ー明日終わっちゃうんですか? 내일 멸망해 버리나요?
ーで、例えば。 그러니까, 만일에.
ーへエーそうですね、 何か、すごく美味しいものが食べたいんです。 헤에-그렇다면, 뭔가 진짜 맛있는 게 먹고싶어요.
ーやっぱり? 역시?
ーえ? 에?
ーいや、私もね、この世の終わりの時には 絶対美味しいものが食べたいんですよ。 とって良い材料を買って来ていっぱいご馳走を作って、 好きな人だけを呼んで、美味しいお酒を飲みながら のんびり美味しい料理を食べて。 아, 저도요, 이 세상의 종말의 때에는 정말로 맛있는 게 먹고싶어요. 정말 좋은 재료를 사와서 맛있는 걸 잔뜩 만들어서, 좋아하는 사람만 불러놓고 맛있는 술을 마시면서 한가롭게 맛있는 음식을 먹고.
ーあの... 저...
ーうん? 네?
ー私も読んでもらえるんでしょうか? 저도 불러주실 수 있나요?
ーま、ガッチャマンの歌を完璧に覚えてる人に悪い人はいませんからね。 갓챠맨의 주제가를 완벽히 기억하고 있는 사람 중에 나쁜 사람은 없으니까요.
**************
ーシャイだけど優しくて、いつものん~びりリラックスして... それが私のフィンランド人のイメージでした。 でもやっぱり...悲しい人は悲しいんですね。 수줍음이 많아도 상냥하고, 언제나 한가롭게 있는... 그런게 제가 가지고 있는 핀란드인의 이미지였어요. 하지만 역시...슬픈 사람은 슬프네요.
ーそれはそうですよ。 どこにいたって悲しい人は悲しいし、 寂しい人は寂しいんじゃないんですか? 그렇죠. 어디에 있든 슬픈 사람은 슬프고, 외로운 사람은 외롭고, 그런거 아니겠어요?
ーどうしてかもめ食堂のメインメニューをおにぎりにしたんですか? 어째서 카모메 식당의 메인 메뉴를 주먹밥으로 하셨어요?
ーだって、おにぎりは日本人のソウルフードでしょう? 주먹밥은 일본인의 소울 푸드잖아요?
ーああ。 아.
ー...母を早く亡くして私が家事を任されたんですけど、 一年に二度だけ、父がおにぎりを作ってくれたんです。 ...엄마가 일찍 돌아가시고 제가 가사일을 맡아서 해야 했는데, 일년에 두 번만은, 아빠가 주먹밥을 만들어 주셨어요.
ー二度? 두 번?
ー運動会と遠足。 おにぎりは自分で作るより人に作ってもらった方が ずっとうまいんだって、そう言って。 卵焼きとかウィンナとか 皆のお弁当に入ってるようなおかずは何もないんです。 鮭と梅とおかかのおにぎり三つだけ。 こんなに大きくて、不格好なんですけど、 それがとっても美味しかったんですよ。 운동회와 소풍. 주먹밥은 자기가 만드는 것 보다 다른 사람이 만들어주는 게 더 맛있다고 말씀하시면서. 계란부침이나 비엔나 소세지처럼 다른 애들의 도시락에 들어있는 반찬은 아무것도 없었어요. 연어랑 매실장아찌랑 가츠오부시 주먹밥 세 개 뿐. 이렇게 크기만 하고 볼품은 없었지만, 그게 정말로 맛있었어요.
**************
ーマサコさん日本に帰っちゃうんですかね? 마사코씨 일본에 돌아가버리는 걸까요?
ー本人にしか分からないことですし、どちらにせよ 私たちはマサコさんが決めたことを喜んであげないといけませんね。 그건 본인밖에 모르는 일인데다, 어느 쪽이든 우리는 마사코씨가 정한 걸 기뻐해 주지 않으면 안되잖아요.
ーそうですね......あの、こんなこと聞くのは変かなと思うんですけど、 그렇네요......저기, 이런 말 묻는 게 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만,
ーはい。 말씀하세요.
ー私が日本に帰ることになったら...サチエさん寂しいんですか? 제가 일본에 돌아가게 된다면... 사치에씨 외로울까요?
ー帰るんですか? 돌아가시는거예요?
ーいや、例えばですけど。 아니, 만일에 말예요.
ーさあ、どうでしょう。元々一人でやってきた食堂ですし、 まあ、ミドリさんにはミドリさんの人生があるし。 글쎄요, 어떨까요. 원래 혼자서 해 왔던 식당이고, 뭐, 미도리씨한테도 미도리씨의 인생이 있는거고.
ー寂しくないんですね。 외롭지 않은거군요.
ーそうは言ってませんけど。 그렇게 말하진 않았는데.
ー寂しくないんですね。 외롭지 않은거네요.
ー寂しいんですって。 외롭다니까요.
ーもういいです。 뭐 됐어요.
ー...でもずっと同じではいられないものですよね。 人は皆変わっていくものですから。 하지만 언제나 똑같을 수는 없는거잖아요. 사람이란 누구나 변해가는거니까.
ーいい感じに変わっていくといいんですね。 좋은 쪽으로 변해가면 좋을텐데요.
ーそうですね。 그러게요.
며칠 전 햇빛은 쨍하니,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는 게 날씨가 참 좋았죠. 오랜만에 햇빛이 나서 그런지 아파트 여기 저기 이불 터는 소리가 들리더군요. 덕분에 저 역시 제 방(한동안 창고로 쓰이다 제가 돌아오면서 그나마 다시 방 구실을 하기 시작한)에서 이부자리를 꺼내어 먼지를 털었습니다. 엄마가 시집올 때 혼수로 해 가지고 왔다던 원앙금침을 이 불효막심한 과년한 딸년이 감히 이부자리로 쓰고 있습니다. 게다가 요즘 집에서 10km 밖에 떨어진 곳에는 나가지도 않고 침침한 방 안에 깔아놓고 그 위에서 얼마나 엑스레이를 찍어댔던지, 손으로 탁탁 두들겨 털 때마다 머니가 풀풀 피어오르더라구요. 아스피린, 아달린, 아스피린, 아달린, 맑스, 맬서스, 마도로스, 아스피린, 아달린... 하면서 눅눅한 이부자리가 제 몸처럼 느껴진다는 둥, 겨드랑이가 가렵다는 둥 하며 날개타령 하던 옛날 어떤 사람의 심정을, 조금은 알 것도 같았습니다.
이왕 하는 마당에 안방 이불까지 꺼내와 한창 신나게 털고 있는데,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여사로 들리던 찌르릉, 찌르릉 하는 매미 소리가 갑자기 생경하게 들려왔습니다. 그끄저께 밥 먹고 운동겸 해서 근처 초등학교 운동장을 슬슬 걷다가 잠자리 두 마리를 발견하고는 여어, 벌써 가을인가, 생각했던 탓일까요. 허긴, 오늘이 몇 일이고 무슨 요일인지 신경쓰고 살았던 게 언제적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저 요즘은 아침이, 밝는구나, 언제나, 그렇지만, 오늘도, 낱알갱이, 주우러, 나가야지, 하는 참새처럼 살고 있거든요. 베이징 소식 아니면 자기들끼리 나와 까불까불 대는 오락프로그램들 같은 것들 밖에 안 나오는 탓에 그저 정신 사나워 TV 꺼 버리고 산 지도 오래되었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시사 주간지들을 통해서만 읽고 있습니다. 은둔도 이런 은둔이 없네요.
그 주간지들을 통해 보는 세상은 참 흉흉한데, 그게 같은 하늘을 이고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할 만큼 제 주변은 한가롭고 평화롭습니다. 그저 신경 쓰이는 거라곤 지난 달 보다 만 원이나 더 나온 도시가스비라든가, 검은콩 한되에 만 이천원 달라는 노점상 아저씨라든가, 우리 집 바로 옆에 세워지고 있는 종합병원이 설치하겠다고 약속한 지하철 출입구의 에스컬레이터라든가, 하는 것들 뿐이랍니다. 그리고 삼 시 세 끼 챙겨먹는 밥 - 그닥 특출난 찬도 없고 매일 매일 메뉴가 달라지는 것도 아닌데 밥 때 하나는 기똥차게 챙겨먹고 있답니다. 하하.
그러나 그 와중에도, 가끔씩 생각이 나곤 합니다. 제 몸 만한 트렁크 두 개 달랑 들고 무작정 도착한 어느 도시의 낯설었던 풍경과, 텅 빈 방과, 불친절한 눈초리의 편의점 아르바이트생과, 그 날 저녁으로 사 먹었던 도시락의 맛과, 그 외로웠던 묘한 느낌의 첫날 밤이 말입니다. 거리의 생김새라든가 색조라든가 즐거웠던 기억들이라든가 하는 것들은 이미 희미해지고 빛이 바래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다지 유쾌할 것도 없었던 처음 그 느낌만은 이상하게 생생해 사무치도록 그리워질 때가 있습니다. 눈물이 나도록 말이죠.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 때의 저는 무척이나 슬프고 외로웠던 것일까요. 그리고 지금 저는 그 때 처럼 외롭고 슬픈 것일까요. 그럴 지도 모르겠습니다. 일단, 밥을 먹고 다시 생각해봐야 겠습니다.
* 이 카모메 식당이라는 영화에서 '토미 힐트넨'이라는 배역으로 나온 핀란드 인의 역할을, 일본 가서 알게 된 다른 핀란드인이 맡을 뻔했다는 사실을 얼마 전에 알게 되었습니다. '토미 힐트넨'의 역할을 맡은 배우는 Jarkko Niemi라는 멀끔하고 준수한 청년입니다. 잠깐, 저 멀끔한 청년이 '토미 힐트넨' 역할을 맡아서 다행이란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핀란드 인은 사실 쪼-끔, 아저씨같거든요.
사막의 밤은 춥지만, 새카만 하늘에 고요히 반짝이는 별이 있으면 견딜 만 하다. 어느 천문학자는 이렇게 이야기했다고 한다. '우리는 모두 우주의 자식들'이라고. 우리 몸을 이루고 있는 모든 구성물질 한 톨 까지, 그것은 머나먼 태초의 빅뱅에서부터 비롯되어 지금까지 돌고 도는 것이라고. 그러나 K는 천천히, 한 자 한 자 힘주어 말했다.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있는 걸까.]
방금 전까지 우리가 보았던 것이 사막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치 유유히 흐르는 커다란 그 강을 보며 K는 그렇게 말했다.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있는 걸까. 예를 들어 저기 굽이를 스쳐가는 수많은 물방울들 중 하나가 시간이 지나고 돌고 돌아 다시 저 굽이를 스쳐가게 될 확률은 얼마나 될까. 얼마만큼의 시간이 지나면 그런 게 가능할까. 만약 가능하다고 하다면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그런 일이 가능할까. 강을 건너던 도중 떨어트린 칼을 엉뚱한데서 찾으려고 했다는 옛날 옛적 어느 중국인처럼 바보같은 질문이긴 하지만.
어느 중국인처럼 말이야, 라는 말이 풍기는 기묘한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나는 그 이후로 단 한번도 K를 볼 수 없었다. 하긴, 어차피 우리는 오다 가다 만난, 어쩌다 일생의 단 한번의 우연에 의해서 마주치게 된 그런 사이니까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고 해도 이상할 것은 없다. 그리고 지금 나는, 혼자서 다시 사막을 여행하고 있다. 사막의 밤은 춥다. 그러나 별이 빛나고 있으니까 견딜 만은 하다. 아무 것도 없는 텅빈 사막에서 바람이 불어온다. 먼지로 가득한 그 바람 속에서 나는 언뜻 누군가의 속삭임을 들은 듯도 하다. 그것은 모래바람에 실려 오는 태고적 인간들의 목소리, 나를 만나고 싶어했던, 그래서 여기서 줄곧 나를 기다려 주었던, 한 때는 인간의 일부분이었던 모래먼지들이 내는 목소리였다.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드디어, 우리는, 다시, 만나게, 되었구나, 하고.
Lucid Fall - 나의 하류를 지나
나는 이미 찾는 이 없고 겨울 오면 태공들도 떠나 해의 고향은 서쪽 바다 너는 나의 하류를 지나네 언제 우리 만날수 있을까 어스름 가득한 밤 소리
'모든게 우릴 헤어지게 했어'
모든게 우릴 헤어지게 해 모든게 우릴 헤어지게 해
종이 배처럼 흔들리며 노랗게 곪아 흐르는 시간 어떻게 세월을 거슬러 어떻게 산으로 돌아갈까 너는 나의 고향으로 가네 나의 하류를 지나
일단은 다이어트를 하고 있으니까, 카페에 들어가서도 언제나 스트레이트 홍차 정도를 마시는 게 고작이다. 단 것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예쁘게 만들어진 케이크를 보면 기분이 좋아지는데 그럴 때면 눈 딱 감고 먹어버릴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다행히 아직까지 정말로 먹어버린 적은 없다. 원래 먹는 것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이게 참 힘든 일이다. 먹고 싶은 것을 안 먹고 참는다는 것이.
그렇다고 해서 남이 내 케이크를 먹어 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케이크를 아무리 들여다보며 흐뭇해 해도, 남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하염없이 지켜보고 있는다 해도, 그 달콤함을 직접 느낄 수는 없는거니까. 결국 남의 것은 남의 것, 내 것은 내 것, 그 변하지 않는 진리는 신에게 빌어도 어쩔 수 없는 것이니까, 지금까지의 노력을 수포로 돌리고 먹어버리거나 아니면 먹고 싶은 것을 꾹 참거나 하며 어느 쪽을 선택하든 뒤따르게 마련인 고통을 스스로 감내할 수 밖에 없는 거다. 케이크란 그런 거다. 다이어트란 그런 거다. 그리고 인생이란 그런 거다. 어쩐지 그런 생각이 든다.
내가 대신 먹고 정말 리얼하게 맛과 감촉을 설명해주는 건 어떨까? ^_^
나는 언젠가부터 뭔가를 위해서 뭔가를 참고 인내한다는 것을 못 견디게 되어서, 결국 다이어트도 하지 못하고 있어. 사나흘 술이나 단 음식을 자제하다가 폭주해버리면 다시 원래 상태로 돌아가는 사이클을 반복하고 있는데, 그래도 천천히 체중은 증가하지만 살 만한 것 같아. 고통을 반드시 참고 좋은 것을 반드시 포기하지 않아도 살 수 있기도 한 듯.
너무 스토익해지지 말고, 맘 편하게 지내란 말을 하려고 괜히 쓸데없는 말을 하네. 암튼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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