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4'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0/04/25 Take me to the end of the world (1)
  2. 2010/04/03 나를 위로해준 인터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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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읽은 만화책에서는 버스를 타면 꿈의 세계로 갈 수 있었다. 그 꿈의 세계에 발을 딛는 순간 지금까지 내가 가지고있었던 모든 기억을 잊어버리게 되지만 까짓거 기억따위, 개나 줘 버리라지, 하는 심정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엘 탔다(하긴 요즘은 자꾸 뭔가를 깜박깜박 하는 것이, 이미 누군가가 내 기억을 선불로 받아갔는지도 모르겠다). 창 밖으로 간만의 봄볕을 쬐며, 진심으로 이 버스가 나를 꿈의 세계로, 세상의 끝으로, 이도 저도 안 된다면 어딘가 아무데라도 좋으니 내가 숨을 수 있는 곳으로 데려다 줬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토요일, 오후, 봄날. 그리고 나는 그 버스 안에서 그만 깜빡 잠이 들어버리고 말았다. 깨어보니 이미 내려야 할 곳은 한참 지나쳤고, 결국 어쩔 수 없이 다시 학교로 들어왔다.

요즘은 비교적 잠을 잘 자는데도 버스에서 졸아버린건 왜일까, 곱씹어보니 아마도 진이 빠져서였던 것 같다. 올해 고1이 된 동생녀석이 머리털 나고 처음 친 모의고사에서 전과목 반타작이라는 사상 초유의 점수를 받아와 엄마는 식음을 전폐하고 몸져 누웠다. 나는 갑자기 시작된 생리에 생리통에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팠지만 과외하는 학생녀석의 시험이 내일 모레로 다가온지라 병든 닭처럼 꾸벅꾸벅 조는 녀석을 깨워가며 수업을 하고는 목이 잠겼다. 사실 동생을 탓할 자격도 학생을 혼낼 주제도 못 되는 것이 나도 발제며 이론 수업이 코앞으로 닥쳤지만 오늘은 도저히 책을 볼 엄두가 나지 않아 그냥 연구실에서 빈둥대다 온 터다. 그래놓고 집에 와서는 또 잠이 안 온다며 신세한탄을 늘어놓고 있다. 아, 그러고보니 다음주에는 집담회와 회식도 있군. 계산해 보니 또 이론 리딩 할 시간이 나오지 않는다. 그러니까, 진심으로, 내 인생에서는 뭔가 분명히 잘못된 게 있다니까. 제발 누가 나를 꿈의 세계로, 세상의 끝으로 데려다 줬으면 좋겠다. 이도 저도 안 된다면 내가 숨을 수 있는 곳으로, 아니면 세상살이가 조금만 더 만만한 곳으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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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25 01:15 2010/04/25 01:15
daily life l 2010/04/25 01:15
100: 배철수 씨가 한 인터뷰에서 “김창완 씨는 일을 놀이라고 생각하나 보다. 부럽다. 나와는 좀 다르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라는 말을 했는데, 지금 하고 계신 일은 일일까요, 놀이일까요.
김창완: 글쎄요…. 심장이 그토록 애절하게 뛰고 있는 이 순간, 자기 심장의 박동을 일이라고 생각할 사람이 있을까요. 생명은 일하고도 관계없을 수도 있어요. (사이) 아니 생명은 일하고 관계가 없죠.

100: 그렇다면 지금 하고 계시는 이 일련의 것들은 일이 아니면 무엇일까요?
김창완: 글쎄, 뭐라고 할까. 그저 내 삶이죠. <낮잠>에 제가 참 좋아하는 대사가 있어요. “돌이켜보면 그저 먹고 산 거예요. 일하고 벌고 그저 먹고 산거예요.” 그 대사가 참 좋아요. 그저 먹고, 그리고 사는 거죠.



솔직히 말하면 나는,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울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특권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선생님에게서 앞으로의 계획이 뭔지에 대해 말해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얼른 대답이 튀어나오지 않아 약간의 비참함을 느꼈고, 친구들이 너무나도 당당하게 인생의 계획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들을 때면 약간의 당혹감을 느낀다. 그도 그럴것이, 딱히 무엇때문에 힘들다는 실체는 없지만 어쩐지 늘 윗돌 빼서 아랫돌 괴는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나와 우리 가족들의 입버릇이 무엇이었던가 - 닥치면 다 하게 되어 있다, 때가 되면 길이 생긴다, 우리가 언제 계획같은 거 세우고 살았나, 하는 것 아니었던가. 때문에 나는 학문적으로도 불확정적인 인간의 인생에 규칙과 예측의 잣대를 들이대려는 소위 '과학'적 시도에 대해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지 못해 날선 적개심을 보이는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이건 태생적인 방법론이다(라고 생각하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내 스물 여섯 평생을 지탱해 주었고 지탱하고 있고 앞으로도 지탱할 것은 결코 과학이 아니라고 지금도 나는 굳게 믿고 있다. 그러나 - 혹자는 팔자를 받아들이면 인생이 편해진다지만 - 주변에서는 여전히 끊임없이 나에게 미래의 계획을 요구하고, 과학을 요구하며, 심지어는 나 자신조차도 지금까지 운이 좋았기에 망정이지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혹여나 삐끗하는 찰나들이 찾아오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 때마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다. 이 때 힘이 되는 것은 역시 괜찮아, 잘 하고 있어, 라는 따뜻한 위로와 격려의 손길이지만, 어쩐지 내 주변은 이러한 무계획성에 '게으름' '무책임' 이상의 딱지를 허용하지는 않는 것 같다 - 실제로 상당부분이 그렇다고 하더라도 - 는 생각이 들면 어쩐지 세상에서 혼자 억울한 일은 다 당하고 사는 듯한 기분이 들어 애써 억눌러온 우울함마저 다시금 스멀스멀 기어나오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니 내가 처음 김창완의 이 인터뷰를 보았을 때의 그 심정이란. "돌이켜보면 그저 먹고 산 거예요. 일하고 벌고 그저 먹고 산거예요."라는 김창완의 말에는 마치 내가 그렇게 틀리지만은 않았다는, 내가 지금껏 살아온 방식대로, 이후로도 그렇게 살아가면 된다하는, 따뜻한 위로, 격려, 같은 것들이 들어있는 것만 같아서, 정말로 그런 기분이어서 역시 대가는 다르다, 무조건, 이라는 말에 어폐가 좀 있긴 하겠지만 그래도 대가라 불리는 사람에게는 뭔가 배울 점이 있다, 하는 생각과 동시에, 안도감, 격려, 같은 것들이 한꺼번에 몰려와 나는 순간 먹먹해지기까지 했던 것이다.

기실, 과학이니 계획이니 하는 것을 차치하고서라도 누구나 한 치 앞을 분간하지 못하고 다들 힘든 사람들 투성이인 지금, 여기, 오늘의 대한민국에서, 남의 위로는 되어주지 못할망정 나 조차랑 여기도 좀 봐 달라고 떼를쓰는 듯한 글을 연달아 쓰는 이 심정이 여간 쑥쓰러운 것이 아니다. 그래도 어느 선생님께서는 우선 '뱉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도 하셨고, 지도교수님도 맥락이야 다를지언정 '죽은 과학보다는 살아있는 비과학을 하겠다'고 하시는 분이니, 이러한 인터뷰 한 꼭지에 다시금 힘을 내어 늦은 사춘기를 빙자한 방황 때문에 너덜너덜해진 자신을 추스려 앞으로 또 조금 나아갈 수 있을것만 같다. 그러니 오늘부터 남들보다 배로 열심히 - 이건 남들이 다 과학의 길을 걸을 때 혼자서 비과학을 하는 사람의 숙명이다 - 눈 앞에 있는 오늘을 살아야지.  최근에 완전 푹 빠져버린 we rule도 적당히 좀 하고. 비록 간발의 차로 김창완과 저 대사가 나온다는 연극을 놓친 것이 상당히 아쉽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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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03 05:44 2010/04/03 05:44
daily life l 2010/04/03 0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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