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네시 반 경에 저절로 눈이 떠졌다. 그러나 혹여 내가 부스럭대기라도 해서 룸메이트의 단잠을 깨우면 곤란하므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오로지 창 밖에서 흘러들어오는 희미한 빛에 의지해 깜깜한 방 안을 멀뚱멀뚱 바라보고 있는 것이었다. 하다못해 이 시간에 깨어 있을만한 사람에게 문자라도 보내보려 했으나 모두가 깨어있는지 그렇지 않은지 확실하지 않거나 설사 깨어 있다 하더라도 이런 오밤중에 문자가 오가는 것을 그리 탐탁치 않게 여길만한 이들 뿐이었다. 그렇게, 지난 몇년 간 애써 쌓아올린 모래성과도 같은 관계가, 무너지는 것 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일순간 굉장히 평범한 것이 되어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을 때 - 사실 새벽 네시 반에 사람들이 깨어있다고 가정하는 것 자체가 별로 권장할 만한 성질의 것은 아니나 하여튼 그 때는 잠결에 그만 무척이나 상심하고 서러움이 복받쳐올랐다 - 나는 저어 위대한 개츠비씨가 문득 떠올랐다. 책을 읽은지 어림잡아 6년이 지나 이제는 등장인물의 이름이 무엇이었는지, 극중 화자가 개츠비와 어떤 관계였는지도 가물가물한 이 때, 그 짧지 않은 시간들이 돌고 돌고 돌아 이제사 나는 그 불쌍한 사람을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더불어 왜 이 단순한 구조의 이야기책 한 권이 이리도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가, 하는 물음에 대한 답도 보다 명확해졌다. 사람들은, 내색하지는 않지만 각자 저마다의 마음 속 한 구석에 개츠비 한 명 쯤은 품고 살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정말로 단순하고, 어찌 보면 순진하다고까지 할 수 있을 이유를 위해 앞만 보며 달려오다 갑자기 그 모든 것들이 허무해지는 그 순간, 그 순간은 반드시 온다. 그리고 어떤 뜬금없는 계기에 의해 저 깊숙한 곳에 묻어두었던 개츠비가 눈을 뜨면 무릎을 탁 치며 아, 인생이란, 인간이란! 하는 지경에 이르는 것이다(인간이란! 하는 탄식은 최근 존경하옵는 고양이 선생에게 배운 것이다). 해서, 나의 문학비평에 B0라는 점수를 매긴 권보드래 선생님에 의하면 사람들은 공감하기 위하여 소설을 읽는 모양이므로 - 뭔가 더욱 거창한 이유도 있을법 하지만 - 인생의 한 때에는 반드시 공감할 수 밖에 없는 이 사람 개츠비는 고전의 반열까지는 아니더라도 스테디셀러의 목록에는 꾸준히 이름을 올리는 것일게다.
그나저나 개츠비씨에게, 결코 위대하지 않은 개츠비씨의 죽음에 대하여 '위대한'이라는 수식어를 달아 여봐란듯이 비틀어대는 듯한 사람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꽤 고약한 심보를 가진 사람인것만은 확실하다. 아마도 전생에 개츠비 같은 인물에게 돈이라도 떼어먹힌 모양이다. 그렇지 않다면야, 어떻게 한 인간이, 다른 한 인간의 죽음을 오로지 단어 하나를 사용하여 이렇게도 신랄하게 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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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문자하는 친구가 있죠. 활동시간이 새벽이라 그런댑니다. 낮에 보내면 안돼?냐고 하니 '내 마음'이러니 뭐 어쩔 수 없지요.
2007/03/24 01:48망할 메커니즘이란 핸드폰 진동에도 깨어나는 몸.
개츠비..아직도 안 읽어서 어느 구석을 살펴봐도 그런 애는 안삽니다. 캐氏는 살지도...
캐츠비는 저도 좋아합니다. 그래도 나름의 해피엔딩으로 끝난 것이 기쁘기도 하구요. 하지만 우리 개츠비씨도 많이 사랑해주세요.
글이 어렵다.
2007/03/24 10:48아마 잠결에 써서 그렇지 않을까요. 새벽 네시 반에 깨서 무작정 쓴 글이거든요 -_-a;
공감.. 그 순간은 참 느닷없이 찾아오는 것 같다. 가엾은 우리 안의 개츠비.
2007/03/25 06:17아마 지금 다시 개츠비를 읽는다면 난 펑펑 울어버리고 말거야.
난 왜인지 모르겠는데 개츠비를 참 어렵게 버벅대며 읽었어.
2007/03/29 22:38난 원래 소설과 영화를 비교하면 압도적으로 소설 편을 들어주는 사람인데, 개츠비 만큼은 EBS 명작 드라마가 훨씬 나았다는 생각이 드는구랴. 개츠비를 연기한 배우가 훈남이어서 그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