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국 출판업계의 트렌드는 '고양이'인 모양이다. 새로 가르치는 학생의 교재를 고르러 서점에 갔더니 고양이 학교에서부터 위대한 고양이 전사, 고양이 철학자 등등 온통 고양이, 고양이, 고양이 판이다. 사람에게 붙임성있게 굴지 않는다는 이유로 개와는 달리 어딘지 모르게 항상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치 못한다고 느껴지던 고양이가 이리도 갑자기 관심을 받게 된 것을 '고양이과(科) 인간'으로서 기뻐해야 할지는 모르나 아무튼 갑작스러운 고양이 일색에 순간 당황한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더욱 어리둥절한 - 어리둥절하다못해 어안이 벙벙해 혼을 쏙 빼놓을만한 - 진풍경이 서점 한 구석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제레미 리프킨의 <엔트로피> 완역본이 교복 입은 고등학생들 사이에서 날개돋친듯 팔려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몇 년 전부터 이공계의 위기라 여기저기에서 외쳐대는 와중에 나라의 미래를 들쳐업고 나아갈 젊은이들이 자연과학에 관심을 가진다는 사실 자체는 환영할 만도 하다고 생각하지만 학교에서 배우는 과학 교과서 같은 곳에 엔트로피에 대해 나올리도 없고 학생들이 자주 보는 저녁시간의 TV 쇼프로 같은데서 <엔트로피> 같은 책을 소개할리 만무한데도 - <엔트로피> 책 자체를 비하하려는 것은 아니다. 기실 <엔트로피> 책 자체는 상당히 유익한 것이라 생각한다 - 학생들이 이렇게나 엔트로피에 열광하는 상황이 이상하다. 지나가는 학생 아무나 붙잡고 이유를 물어보고 싶은 심정이 굴뚝같았으나 나는 생각보다는 그리 뻔뻔한 인간이 아닌 관계로 일단 꾹 참고 잠시 학생들의 행렬을 지켜보기로 작정했다.
내 궁금증은 이내 풀렸다. 어느 학교인지 모르지만 어떤 고등학교에서 1학년 학생들에게 이 <엔트로피>라는 책을 읽고 독후감을 써오라 한 모양이다. 지나가는 말로 들은, 그 학교의 선생님이라는 사람이 했다는 말이 가관이다. 그 선생님 왈, 이 정도의 책은 미리미리 읽어두어야 서울대에 갈 수 있다고 했단다. 아하, 이제서야 <엔트로피>가 이리도 인기있는 이유를 알았다. 그러니까 위세도 당당한 하드커버의 이 문제의 책, <엔트로피>는 이공계의 위기와 나라의 미래를 걱정한 일련의 학생들이 분기탱천해 자발적으로 선택한 것이 아니라 이 사회가 붙여놓은 서울대라는 허울 좋은 딱지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읽혀지고 있는 것이었다. 세상에, 아무리 요즘의 대한민국이 초등학생들에게 짜라투스트라를 읽히는 데라고는 하지만 한창 먹고 자고 놀고 싸우기도 바쁜 나이의 아이들에게 이런 식으로 뻥을 쳐도 되나 싶어 순간 발끈하여 서울대가 뭐 별거냐, 그리고 엔트로피 따위 몰라도 서울대 잘만 갈 수 있다고 소리칠 뻔 했다, 가 혹여 그 아이들이 엔트로피도 모르면서 잘도 서울대생에 4학년 씩이나 되었다고, 내 무식의 용감함이 0으로 수렴하기보다는 무한으로 발산함을 쑥덕거리는 것이 무서워 분을 삭힌채 일단 눈에 보이는 대로 무슨 책 하나를 집어들었다. 살펴보니 나츠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이다. 솔직히 말하면 일본에 갈 자금을 모으기 위해 한 푼이라도 더 아껴야 할 이 시기에 예정에 없던 충동구매를 하는 것이 조금 꺼림칙하긴 했지만 이 서점 안에 이리도 고양이, 고양이, 고양이가 많은데 나라고 고양이 책 하나쯤 못 살것이 무어냐 싶어 값을 치르고 나왔다.
인간은 오만하다. 한심하며, 어리석다. 아마 특정 시기, 특정 지역의 인간 군집은 더욱 그러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인간보다 좀 더 잘난 고양이가 세상을 바로잡아 주어야 한다. 몇몇의 사람들은 이미 아주 오래전부터 그것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아마, 지금 대한민국 출판업계에는 고양이가 이토록이나 판을 치고 있는 것일게다.
덧> 고등학교 졸업 선물로 <엔트로피>가 아니라 <스콧 니어링 자서전>을 주신 고3때의 담임선생님께 오늘따라 특히 감사드린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무식의 용감함이 무한으로 발산한다는 대목에서 그만 크게 공감의 웃음을 터뜨리고 만 나를 용서해줘요/ㅅ/
2007/03/19 15:41에잉, 자네는 나보다 훨씬 0으로 수렴하니 걱정하지 마시게~
허허. 짜라투스트라는 정말로 어려운데 말이야. ;
2007/03/20 02:43말세일세.
그러고보니 재화오빠랑 같이 사회대 라운지에 앉아서 우리 모두 위버멘쉬가 되어야 한다고 역설하던때가 엊그제같은데 벌써 재화오빠는 군인이고 란짱은 대학원생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