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도 아닌데 엄마한테서 전화가 왔다. 내일이 동진데...하는 말로 엄마는 대화를 시작했다. 동짓날 팥죽 한 그릇 제대로 챙겨먹지 못할 가능성이 농후한 딸을 위해 그렇게 운을 떼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 내일이 동지라는 건 내게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난 팥죽을 좋아하는 것도, 절기마다 먹는 음식을 열심히 챙겨먹는 편도 아니니까. 내 머리는 내일 있을 운영위원 회의와 토플 성적표와 택배로 이미 가득 차 있었다. 아마 엄마가 전화해주지 않았으면 내일이 동지라는 사실을 아예 모르고 지나갔을 것이다.

전화를 끊고 나서 창 밖을 바라보니, 이미 어두컴컴해진 하늘이 빼꼼히 보였다. 하긴, 한 겨울이니만큼 요즘은 오후 여섯시만 되어도 밤의 기색이 완연하다. 오후 일곱시가 훌쩍 넘어 끝나는 전공수업 교실에서 나와서도 따갑게 내리쬐는 태양을 바라보게 되는 한 여름의 경험들이 너무도 강렬해 여전히 적응을 잘 못하고 있긴 하지만. 멍하니 하늘만 쳐다보고 있다가, 더 늦기전에 문화론 페이퍼를 쓰기 전에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을 한 번 더 꼼꼼히 읽어둬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책을 손에 든 것은 밤 열한 시가 넘어서였다. 책은 아예 침대 위에서 읽기로 했다. 읽다가 잠이 들어버려도 좋을 시간이니까. 마침 따뜻한 물 한 잔을 마신 터라 안 그래도 몸의 긴장이 조금씩 풀리던 차였다.

그래도 열두시 전에 책을 잡겠다는 결심을 실천으로 옮기게 되어서 기특하긴 하지만 오늘 하루도 결국 이렇게 한 것 없이 흘러가는군. 한숨을 쉬며 몸을 침대에 던지던 그 때, 마침 스피커에서 피오나 애플의 Across the Univers가 흘러나왔다. 언젠가 하릴없이 인터넷을 방황하고 있다가 누가 피오나 애플 이야기를 써 놓은 글을 보게되었고 그래서 충동적으로 플레이리스트에 올려놓았던 곡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난 피오나 애플을 잘 모른다. 게다가 보통 침대로 향할 땐 컴퓨터를 꺼 놓거나 최소한, 음악을 재생시킬 수 있는 모든 프로그램은 종료시켜놓는다. 그렇지 않으면 자면서도 밤새도록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들을 듣게 될 테니까. 그런 내가 침대 위에서 피오나 애플의 노래를 침대 위에서 듣게 된 경위는 아직도 모호하다. 글에 집중하는 데에도 방해가 되고 - 사이드가 한창 담론이니 권력이니 하는 이야기를 신나게 풀어내던 대목이었다 - 끄는 것을 잊고 까딱 잠이 들어버리면 들어주는 이도 없는 방 안에서 새벽 내내 노래만 혼자서 맴돌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다시 몸을 일으켜 노래를 끄려다, 무슨 심경의 변화가 일었는지 오히려 서너번을 더 돌려 들었다. 아니, 아예 무한반복이 되도록 플레이리스트를 다시금 고쳐놓았다.

그러고보니 오늘은 동짓달 기나긴 밤의 전날이 아니던가. 내일이 지나고 나면 밤도 이젠 서서히 짧아질 것이고 다시 한 번 봄이 오고 여름이 올 것이다. 일년 중 딱 하루, 그 하룻밤만 지나면 말이다. 그러니까 일년 중 가장 밤이 긴 동지의 밤과 그 전날 밤쯤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오리엔탈리즘을 뒤적거리다 잠이 들어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이 때 흘러나오는 음악은 비틀즈도 아니고 데이비드 보위도 아니고 스웨이드도 아닌 피오나 애플의 across the univers인 편이 좋다. 그러나 여전히 침대 위에서 피오나 애플의 across the univers를 듣게 된 경위는 아직도 모호하다.



Fiona Apple - Across the Univ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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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22 00:34 2006/12/22 00:34
liking/musics l 2006/12/22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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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a1t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메리 크리스마스:)

    2006/12/25 00:55
  2. 세희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래도 팥죽은 먹어야지! :-|

    2006/12/26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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