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다 내가 이래뵈도 초창기 싸이월드 가입멤버라는 둥의 자랑질을 할 때만 솟아나는 알량한 자부심만이 있을 뿐 싸이월드를 자주 하는 것도 아니고 내 미니홈피에 특별한 애착을 가지고 있지도 않은데다 일촌인지 뭔지 하는 네트워크는 숨막히기 그지 없을 따름이지만 그래도 생각지 않은 시간 생각지 않은 장소에서 생각지는 않았지만 막연하기만한 언젠가 한 번은 마주쳐 어색한 안부인사보다 말없이 다독이는 따스한 손으로 만나고 싶은 이의 소식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싸이월드의 장점만은 인정해 줘야 한다.

아주 우연히 도반의 미니홈피에 들렀다가 방명록에 남아 있는 성희 언니의 글을 보고 언니의 최근 모습들을 또한 미니홈피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꽤나 시간이 흘렀지만 - 그리고 정말로 '언니 다운'게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 적어도 사진 속 언니의 모습은 내가 기억하고 있는 너무나도 '언니 다운' 모습이어서 나도 모르게 가슴이 뭉클하고 벅차올랐다. '너무 머리가 좋아 세상 모든 걱정을 다 그러쥐고 사는' 성희언니는 대학에 들어와 처음 만난 사람들 중 한 명이었고 나를 여성주의의 길로 이끌었고 나를 명동과 이주노동자들의 천막에 처음 데려가 주었고 나에게 밤새 술을 사 주기도 하였으며 나와 도반에게 남부교육센터를 소개해 준 사람이었다. 언니가 나에게 소개해 준 그 모든 것들이 지금의 내가 되고 지금의 나를 여기 있게 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지만, 공교롭게도 언니가 소개해준 것들 중 그 어떤 것도 지금의 나는 하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나는 늘 언니에게 어떤 종류의 부채의식 같은 것을 느끼고 있기에 애써 언니의 소식을 별로 궁금해하지 않고 살았는 지도 모른다. 비록 나의 존재가 언니의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이란 쌀알 한 톨 만큼밖에 안 되는 정도의 것인지라 언니가 지금의 나를 본다고 해도 너 왜 그렇게 사니, 하고 굳이 질타를 해 주지는 않겠지만 - 그리고 애시당초 언니는 그런 말을 할 사람도 아니지만 - 이미 언니의 삶, 언니의 존재 자체가 나에 대한 무언의 질책처럼 느껴지는 것이 나는 두려웠던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언제건 어디서건 언니를 만나게 된다면 괜찮아, 어떤 길 위를 걷든 넌 지금 충분히 잘 하고 있어, 하는 위로를 받고 싶은 마음도 있었는지 모른다. 다른 누구도 아닌, 언니의 글이나 언니의 목소리나 언니의 따뜻한 손으로.
 
2009년 12월의 마지막은 별로 특별한 것 없이 지나갔지만, 사실은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받고 많은 사람들에게 폐를 끼쳤다. 그 때마다 내 천성이 어리석은지라 고맙다는 말 감사하단 말 미안하다는 말을 나의 글이나 나의 목소리나 나의 따뜻한 손으로 말하지 못한 것이 늘 미안했다. 얼마나 많은 분들이 이 글을 많이 볼 지는 모르겠으나 이 자리를 빌어 나의 서툴고 어리석은 마음을 전한다.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그리고 나에게도 한 마디, 힘 내야지, 성희 언니의 일기장에 적혀 있던 말 처럼, "싹 다 갈아엎고 새로울 순 없으니 / 보다 조금이라도 더 나음에 의미를 둔다 / 나는 이미 가진 게 많으니 / 겁낼 거 없다"


루시드 폴(Lucid Fall) - 그대 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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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01 10:06 2010/01/01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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