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불쾌한 일이 하나 있었다. 2주 전쯤 프린지 네트워크 사무실에 잠깐 앉아있는 동안 누군가가 내 우산을 자기 것으로 착각하고 가져가버렸다. 할 수 없이 나는 내 것 대신 남겨진 우산을 들고 터덜터덜 집으로 오면서 사무실에 혹시 우산을 바꿔 간 사람이 있으면 알아봐달라는 부탁을 해 두었다. 허나 2주가 다 되도록 연락이 오지 않기에 그냥 포기해야 하나보다 싶었다.

그런데 그끄저께 사무실에서 연락이 왔다. 우산을 바꿔 간 사람을 찾았다고 한다. 좀 시간이 지나긴 했지만 그래도 찾은 것을 다행이라 생각하며 내가 지금 당장 홍대에 갈 만한 시간이 없으니 다음에 모일 때쯤 우산을 가져다 주겠노라고 이야기했다. 그랬더니 다음날, 이번에는 우산 주인에게서 직접 전화가 왔다. 지금 우산을 돌려줄 수 있겠냐는 것이었다. 내가 도저히 사무실에 들를만한 시간이 안 된다고 말을 했더니 그럼 내가 있는 곳으로 찾아오겠다고 한다. 말투가 상당히 직선적이어서 되려 내가 추궁당하는 느낌도 들었으나, 그래도 그 더운날 직접 내가 있는 곳까지 와 준다니 고맙다는 생각도 했다.

헌데 이 사람, 약속시간에 10분이나 늦게 와서는 대뜸 한다는 소리가 '어쩌다 우산을 가져가셨어요'다. 게다가 내 우산은 가져오지도 않고, '사무실에 맡겨놨으니 찾아가세요' 한다. 평소때 같으면 그저 오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고맙습니다, 하고 넘어갈 일을 괜스레 뿔이 나서 먼저 가져가신건 그 쪽 아니냐고, 한 마디 대꾸해주었다. 여기까지 찾아올 정도로 소중한 우산이었으면 2주라는 시간이 흐르기 전에 수소문이라도 해 볼 것이지, 늦게서야 찾아와서 겨우 한다는 소리가 이런거냐 하는 생각에 화가 나서 한 말이었다. 지금에서야 생각하면 그냥 한 번 웃고 털어버리면 되었을 일이지만, 무더운 날씨 탓인지 그 불쾌함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그 사람을 만나 우산을 전해주고 과외하는 학생 집에 가는 도중 간단하게 요기를 하러 식당에 들어서면서도 나는 내내 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음식이 나오길 기다리는 동안 읽은 모 잡지에 실린 말이 갑자기 내 뒷통수를 쳤다. "...나는 우선 분노와 증오는 다르다는 걸 되새기고 싶다. 불의와 억압과 폭력의 현장에서 분노는 당연하고 정당한 것이다. 물론 분노는 자칫 증오로 변질되기 쉽다. 증오는 적을 미워하다 적을 닮아버린 상태다. 증오는 보복과 폭력의 악순환을 낳는다..."는 김규항씨의 글이었다. 이 일을 잊어버리지 못하고 계속해서 곱씹고 곱씹는 지금 나의 모습은 분노라기 보다는 차라리 증오에 가까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친절한 사람이 되겠다느니, 성인군자가 되겠다느니 하는 평소에 맹세가 무안해 지는 순간이었다. 금새 귓볼까지 빨갛게 달아올랐다. 부끄러운 마음에, 읽고 있던 잡지에 감히 눈조차 마주칠 생각을 못하고 묵묵히 밥을 먹기 시작했다.

한참 밥을 먹고 있는데 누군가가 내게 휴지를 쑥 내민다. 누군가 했더니 혼잡한 식당에서 어쩌다 나와 합석을 하게 된 학생이었다. 아마도 자기가 쓸 휴지를 가지러 가다가, 혹시 나도 휴지가 필요할까 싶어 내 것까지 챙겨온 모양이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사람을 위해 자그마한 수고를 아끼지 않는 그 학생의 마음 씀씀이가 참으로 예쁘고 고마워서 순간 그날 있었던 불쾌한 일 따위, 모두 잊어버리고 말았다. 아아, 보라. "증오는 보복과 폭력의 악순환을 낳"지만 친절은 웃음과 또 다른 친절의 선순환을 낳지 않는가 - 덕분에 이번엔 정말이지 진심으로, 증오따위는 저기 어느 한 구석에 치워버리고 친절하고 다정한 성인군자가 되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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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20 16:57 2007/08/20 16:57
daily life l 2007/08/20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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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likeablue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괜찮아 ㅋ 누구라도 열받았을거야 ㅋㅋㅋ

    2007/08/20 23:26
  2. saypeace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쓸데없는 다짐이우.

    2007/08/20 23:46
  3. 황옵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후려갈기지 그랬니.^^.

    2007/08/21 02:52
  4. suddentime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너 화내는 모습이 눈에 선한 것을 보면 친절한 민욱씨 되기 위해선 험난한 과정이 예상되는구나ㅋㅋㅋㅋㅋ

    2007/08/30 06:02
    • 飛정상 2007/08/31 23:56  댓글주소  수정/삭제

      사실 그렇게 화도 안냈어요;; 그냥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아니, 먼저 가져가셨잖아요..' 이정도?; 저 요즘 많이 친절해졌다니까요.

  5. esperanza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나가다가...한줄적고싶은충동을이기지못하고)

    이세상에는가끔은이해못할사람들이조금있답니다.
    캐릭터라고생각하면...
    모든상황이괜찮아지더군요...

    2007/09/19 01:50
    • 飛정상 2007/09/20 22:55  댓글주소  수정/삭제

      좋은 조언 고맙습니다.
      하지만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고, 사실 저도 그렇게 좋은 성격을가진 사람은 아니어서 반성을 많이 한답니다. 허허.

  6. 동치미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조금 늦은 답글이지만;;
    가끔 자신이 잘못해놓고, 남을 탓할때가 있지요.
    그분도 아마 착각하시지 않았을까.. 생각되요.
    飛정상님께서 일깨워주신것일수도 있지 않을까요?

    남들이 모라해도, 할말은 하고 사는 사람이 되지 못해서,
    전 오히려 飛정상님이 부러워요~~

    2007/10/08 13:11
    • 飛정상 2007/10/09 19:58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도 무척이나 소심한 사람이 되어놔서 별 말 못했답니다 허허허;
      그나저나 오래간만이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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