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이 창문 옆에 놓여 있어서 좋아요. 환하잖아요. 이제부터 식사는 밝은 데서 하는 습관을 들여요. 더군다나 혼자일 때는 말예요."
한겨울 밤에 캄캄한 방에 혼자 앉아 솥 바닥을 긁어 먹던 때가 있었다. 삭망의 밤에 바위산에 숨어 사람의 뼈를 갉아 대는 원숭이처럼. 부러 그랬을 리는 없다. 혼자서 환해 봐야 더욱 견디기 힘들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닌게아니라 참으로 오랜만에 사람과 마주 앉아 밥을 먹는다. 식탁 위에는 금방 만든 생채와 두부조림과 멸치볶음과 김과 콩나물국과 아직도 뚝배기 안에서 부글부글 끓고 있는 된장찌개 들이 있다. 또한 김이 모락모락 나는 흰밥이 있다. 나는 노릿하게 구워진 꽁치의 칼집에다 젓가락을 대 속살을 끄집어 낸다. 아직 녹지 않은 소금 알갱이가 이빨에 씹힌다.

- 윤대녕, 「은항아리 안에서」中



가만히 꼽아보면, 영화는 혼자 보고 술은 혼자 마시고 차는 혼자 마셔도 죽어도 밥은 혼자서 먹지 않겠노라고 선언한 이들이 주변에 몇 된다. 허나 서울에 올라온 직후부터 최근까지 나는 혼자서 밥을 먹는게 무에 그리 대수인가 하는 류에 속했다. 혼자서 밥을 먹으면 반찬 신경쓰지 않아도 되고, 차림새 신경쓰지 않아도 되고, 상대의 과묵함 또는 수다스러움에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 다만 내가 신경을 쓰는 것은, 밖에서 혼자 밥을 먹을 때 저 사람은 왜 혼자 밥을 먹을까 식의 과도한 관심 내지는 호기심 내지는 쓸데없는 동정, 혹은 남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고 믿고 있는 내 자신의 과도한 자의식이다. 생각해보니 나도 혼자 밥 먹는 사람을 볼 때마다 머리속에서 온갖 구구한 억측을 쏟아내긴 한다. 또 생각해보니 내가 혼자 밥을 먹든 말든, 사람들이 그다지 나에게 관심을 가져줄 것 같진 않다.

그런데 아무튼 요 몇달간은, 2인 이상이 함께 밥을 먹게 되는 횟수가 부쩍 늘었다. 개중에는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짐작키 어려울 정도로 숨막히게 어려운 자리가 있었는가 하면, 또 한편으로는 굳이 밥을 먹지 않아도, 밥상에 같이 앉아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배부른 자리가 있었다. 다행인 것은 얼추 머리속에서 헤아려보아도 좋은 사람과 함께 한 자리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걱정인 것은, 나도 모르게 그만 이렇게 다정하고 따뜻하고 즐거운 식사 분위기에 익숙해져 앞으로 마주하게 될 쓸쓸한 식탁들에 더 이상 적응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덧> 윤대녕의 작품들은 내게 '김수현 드라마' 같은 존재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김수현 드라마와 윤대녕 작품의 공통점은 '관심없다, 재미없다 하면서도 잊을만 하면 보게된다'는 것이다. 문어체의 작위적인 대화들은 여전히 싫고 자주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별 볼일 없어보이는 중년 아저씨'들에게 또한 그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미스테리어스한 여자'들은 왜 그렇게 추파를 던지는 지 여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난 오늘도 궁시렁궁시렁 대면서 윤대녕의 단편 하나를 슬근슬근 읽어치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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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6/30 02:47 2007/06/30 0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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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a1t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적응기간이라도 좀 짧았음 좋으련만. 평소에 세 끼를 거의 혼자 먹는 편인데 요즘 외할머니가 와 계셔서 집이 낯선 공간이 되었어요.

    2007/06/30 23:01
    • 飛정상 2007/07/02 02: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또 안계시면 다시 집이 낯설어지겠지요. 사람들이랑 밥 같이 먹는건 좋은 경험이고 추억이고 기억인 것 같아요. 하지만 전 다시 밥을 혼자먹게 될텐데 앞으로의 시간이 좀 걱정이예요.

  2. simpleapple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끼 밥을 먹더라도 그릇에 담아 젓가락질 하면서 먹기를 바라고 있어요. 기숙사생의 슬픔.

    2007/07/02 00:39
  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치, 이 분 소설 묘해.
    영화는 혼자보고 차는 혼자마셔도 밥은 혼자 못먹는거 그거 나다 나. -_-;
    그나저나 어떤 영화 대사인데, 밥 혼자 먹으면 신장에 안좋대.

    2007/07/03 00:27
    • 飛정상 2007/07/04 01: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난 같이 먹는 밥은 같이 먹는 밥대로, 혼자 먹는 밥은 혼자 먹는 밥대로 즐기는 편이었는데 요즘 좀 한쪽으로 기울어가고 있는게 아닌가 싶어 허허. 아무튼 나랑 밥 좀 많이 먹어주어;

  4. 경진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너 일본오면 혼자서 밥먹어야되~! ㅋㅋㅋ
    >.,<
    농담이야~-_-;;

    2007/07/03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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