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부터가 호흡 짧은 글에 익숙지 않은 사람인 나는 - 그래서 평소 본인은 내 글을 두고 무성영화 상영관에서 등장할 법한 변사들의 흐드러진 말솜씨같다고 생각해왔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 아무리 노력해도 시나 가사나 뭐 그런 것들을 써낼 수 없다. 대학생활 4년이 지나도록 내가 가지고 있는 시집은 달랑 네 권. 그 중에 세 권은 수업때문에 구입한 하이네 시집 한 권과 유하 시집 두 권이고, 나머지 하나는 작년 여름 박병장(이제는 박예비역) 면회하러 갔다 얼떨결에 받아버린 생일선물이었다. 그나마도 지금 그 네 권의 시집은 나로부터 멀리 떨어져있다. 아마도 이젠 창고로 쓰이고 있는 대구의 내 방 어딘가에서 보얀 먼지를 뒤집어 쓴 채로 숨죽이고 있을 것이다. 짐작컨대, 우리집 식구들 중 누군가가 시집을 읽는 모습을 본 기억이 한 번도 없었던 것으로 미루어보아 앞으로도 그 시집들은 한동안 거기 있을 것이다. 어째서 나는 이리도 시를 홀대하는가. 어쩌면 내 몸속에 흐르고 있는 피 자체가 시 같은 것과는 별로 친하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시를 좋아하고 잘 쓰는건 일종의 유전자에 새겨진 각인같은 무엇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아, 이건 너무 궁색한 변명이었나.
각설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내 머리와 심장께에서 펑펑 솟아나고 있는, 수채구멍의 구정물색같은 오욕번뇌 - 나는 이 말이 참 마음에 든다. 달리 무슨 말을 쓸 수 있겠는가 - 들은 평소 내게 익숙한 줄글 같은 걸로는 도저히 전부 표현해 낼 수 없을것만 같다. 지금이야말로 시가 필요한 그 때인 것이다. 혹 되먹지 않은 실력으로 섣불리 그것들을 밖으로 끄집어내어 주저리주저리 읊어댔다간 그것들은 순간 원래의 것보다 훨씬 번잡스러운 무엇이 되어, 그렇지 않아도 변변찮은 나 자신을 더욱 부끄럽게 만들고야 말 것이다. 그래서 나는 시를 즐겨 읽지도 않는 주제에 시를 찬양할 수 밖에 없다. 시가 나의 쓰잘데 없는 감정들에 대한 뒤치닥거리에 유용할 것만 같아서 그런 것은 절대로 아니다. 오히려 나는 시가 가진 절대적인 힘 - 어떤 것이라도 그것의 본질과 나름의 아름다운 면을 끄집어 낼 수 있는 통찰력 - 을 인정하고, 감탄마저 하고 있다. 허나 어쩌랴. 나는 시를 지을 수도 없는 사람인 것을. 이미 나의 피가 시를 거부하고 있는지도 모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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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좀 길게 써보고 싶어요. 어제 꾼 꿈도 길게 쓰기 좋은 소재였는데 반은 잊어버렸지 뭐에요. 그렇다고 시를 쓸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만.
2007/05/21 13:32요즘은 꿈 기록 잘 안하시나요? 시를 쓸 수 있는 사람은 참 좋겠다는 생각을 부쩍 합니다.
꿈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계속 꿔대는데 기억력이 따라주질 못하나봐요. 깨자마자 휴대폰 메모로 요약해놓긴 하는데 다시 보면 무슨 말인지... 노트로 바꿔야 겠어요.
네, 꾸준한 꿈쌓기 보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