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화장실의 벽면에 부착된, 늘 텅 비어 있는 휴지걸이를 보고 있노라면 예전 원숭이었던 인간들의 몸 구석구석에 남아 있는 퇴화의 흔적들이 겹쳐진다. 저 휴지걸이들은 한 번이라도 제 용도로 쓰였던 적이 있을까, 앞으로 저 휴지걸이가 제 용도로 쓰일 때가 있을까, 저렇게 텅 빈채로 계속 남아 있다면, 언젠가는 저 휴지걸이도 인간의 꼬리뼈 같은 것 처럼 흔적만 남긴 채 퇴화되게 될까, 하는 생각을 하며 자판기에서 뽑은 휴지를 꺼내어 뒷처리를 했다 - 그러고보면 쓰이지 않게 된 휴지걸이는 돈도 안 되는 꼬리뼈 같은 것 대신 휴지 자판기라는 보다 크고 영리한(!) 퇴화의 흔적을 남긴 셈이다.
daily life/in Daegu l 2009/01/06 00:10
왼쪽 위의 어금니가 시리기 시작한 것은 꽤 오래 전 부터의 일이었으나, 어렸을 때는 그 묘한 깨끗함과 무시무시한 공구들과 냄새와 소리가 무서워서, 그리고 철이 좀 들기 시작하고 나서는 몇십 만원은 우습게 깨지는 치료비가 무서워서 치과에 가지 않게 된 것이 습관처럼 되어버려 평소에 조심하며 음식을 씹던 - 실상을 말하자면 그 상태 그대로 방치하고 있던 - 참이었다. 그러다 며칠 전 딱딱한 오트밀을 씹다가 느낀 찌릿한 통증이 하루가 지나도 가시지 않자, 최후의 수단(!)으로 택한 것이 치과행이었다.
얼마 전 개원한 집 앞 치과의 (내 고등학교 동창과 꼭 닮은) 젊은 의사는 내 어금니 주위를 이리 저리 살펴보고 찔러도 보고 눌러도 보고 흔들어도 보더니 어금니가 깨졌네요, 일단 신경치료 받으시고 이빨을 씌우셔야겠어요, 라고 대수롭잖게 말했다, 만, 그것은 이때까지 충치도 하나 없었고 단지 치과에 가기 싫다는 이유만으로 젖니를 갈 때도 늘 혼자서 흔들리는 이를 뽑아버리곤 했던 나에게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일종의 '선고'였다. 그리고 당혹스러워하는 내가 뭔가의 사리판단을 하기도 전에 치료는 행해졌다. 마취를 하고, 이를 갈아내고, 사진을 찍고, 아직도 얼얼한 볼을 부여잡고 다음 치료의 예약을 잡았다. 이런 치료가 몇 번 더 이루어졌고, 이제는 치과에도 좀 익숙해진 탓인지 얼굴 위로 쏟아지는 불빛과 윙윙 거리는 조그마한 회전톱날의 소리를 들으면서도 의자에서 꼬박꼬박 졸게도 되었고, 매 번 치료때 마다 나가는 적지 않은 비용에도 조금은 무덤덤해지게 되었다. 그리고 오늘 드디어, 이미 여러번의 치료로 반토막이 나 버린 어금니에 금을 씌우게 된것이다.
2008년의 마지막에 한 일이 새 이를 씌우는 것이라니, 그것도 20여년 만에 간 치과에서, 몇 주 전 까지만 해도 이 세상에 존재하는 지도 몰랐던 사람에게 무방비 상태로 내 시커먼 입 속을 내 보이고 누워 있는 자신을 어디 상상이나 했던가. 그런 와중에도 치료하는 내내 스크린에 비춰지고 있는 내 어금니 사진을 보면서, 그리고 지금쯤 교토 5번 버스가 다니는 길목의 노자키 정형외과 어느 한 구석에 보관되어 있을 내 무릎 엑스레이 사진들을 떠올리면서 올 한해도 이 세상에 여러 가지 기록, 내 흔적들을 남겼구나, 특히 치아 사진을 찍다니 앞으로 무슨 일이 있더라도 신원 확인에는 별 어려움은 없겠다, 하는 생각이 문득 스치고 지나갔다. 이렇게 몇 장의 엑스레이 사진으로 남은 내 2008년의 시간들. 그리고 이제는 벌써 2009년, 스물 다섯이 되는 해다. 올 한해는 좀 더 생산적인 것들을 남길 수 있도록 노력해야지, 또한 따뜻하게 굽어 살피는 눈으로 '모든 살아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러니까 이 글을 읽으시는 모든 분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네이버 메인에 잔디언니 얼굴이 떠서 놀랐다. 2009년 1월 1주 네이버 이주의 국내앨범에 선정된 브로콜리 너마저, 축하해요! http://music.naver.com/today.nhn?startdate=20090101
daily life/in Daegu l 2009/01/01 00:14
얼마 전 개원한 집 앞 치과의 (내 고등학교 동창과 꼭 닮은) 젊은 의사는 내 어금니 주위를 이리 저리 살펴보고 찔러도 보고 눌러도 보고 흔들어도 보더니 어금니가 깨졌네요, 일단 신경치료 받으시고 이빨을 씌우셔야겠어요, 라고 대수롭잖게 말했다, 만, 그것은 이때까지 충치도 하나 없었고 단지 치과에 가기 싫다는 이유만으로 젖니를 갈 때도 늘 혼자서 흔들리는 이를 뽑아버리곤 했던 나에게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일종의 '선고'였다. 그리고 당혹스러워하는 내가 뭔가의 사리판단을 하기도 전에 치료는 행해졌다. 마취를 하고, 이를 갈아내고, 사진을 찍고, 아직도 얼얼한 볼을 부여잡고 다음 치료의 예약을 잡았다. 이런 치료가 몇 번 더 이루어졌고, 이제는 치과에도 좀 익숙해진 탓인지 얼굴 위로 쏟아지는 불빛과 윙윙 거리는 조그마한 회전톱날의 소리를 들으면서도 의자에서 꼬박꼬박 졸게도 되었고, 매 번 치료때 마다 나가는 적지 않은 비용에도 조금은 무덤덤해지게 되었다. 그리고 오늘 드디어, 이미 여러번의 치료로 반토막이 나 버린 어금니에 금을 씌우게 된것이다.
2008년의 마지막에 한 일이 새 이를 씌우는 것이라니, 그것도 20여년 만에 간 치과에서, 몇 주 전 까지만 해도 이 세상에 존재하는 지도 몰랐던 사람에게 무방비 상태로 내 시커먼 입 속을 내 보이고 누워 있는 자신을 어디 상상이나 했던가. 그런 와중에도 치료하는 내내 스크린에 비춰지고 있는 내 어금니 사진을 보면서, 그리고 지금쯤 교토 5번 버스가 다니는 길목의 노자키 정형외과 어느 한 구석에 보관되어 있을 내 무릎 엑스레이 사진들을 떠올리면서 올 한해도 이 세상에 여러 가지 기록, 내 흔적들을 남겼구나, 특히 치아 사진을 찍다니 앞으로 무슨 일이 있더라도 신원 확인에는 별 어려움은 없겠다, 하는 생각이 문득 스치고 지나갔다. 이렇게 몇 장의 엑스레이 사진으로 남은 내 2008년의 시간들. 그리고 이제는 벌써 2009년, 스물 다섯이 되는 해다. 올 한해는 좀 더 생산적인 것들을 남길 수 있도록 노력해야지, 또한 따뜻하게 굽어 살피는 눈으로 '모든 살아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러니까 이 글을 읽으시는 모든 분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네이버 메인에 잔디언니 얼굴이 떠서 놀랐다. 2009년 1월 1주 네이버 이주의 국내앨범에 선정된 브로콜리 너마저, 축하해요! http://music.naver.com/today.nhn?startdate=20090101

요즘 텔레비전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하나금융그룹의 '워킹맘' 광고. 힘든 일상 생활 속에서도 '훗날 태어날 아이가 대한민국을 더 큰 나라로 만들어줄 희망을 품고' 기뻐하는 임산부의 모습을 담았다(고 한다). 실제로 하나금융그룹은 2003년부터 직원들을 위해 어린이 보육시설을 운영하고 있다는데, 아마 그래서 이런 광고를 만들었나보다, 싶다.
그런데 나는 이 광고를 볼 때마다 무척이나 불편하다. 이 광고가 텔레비전에서 좀 그만 나왔으면 좋겠다. 요즘같이 전반적으로 뒤숭숭한 세상에서 아이를 낳고 안 낳고가 단순히 개인적 판단에만 근거하는 문제가 아님은 잘 알고 있다. 국가적으로 저출산이 문제시 되고 국가적 차원에서 이러한 문제들을 자꾸 환기시키는 현상의 밑바닥에는 다분히 국가주의적인 요소들이 숨어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 그러니까 인구가 좀 있어야 세금도 거두고 국가 경쟁력도 좀 높이고 아무튼 그래서 다 같이 잘 먹고 잘 살게 될 것 아니냐, 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회 구성원들이 이 문제에 대해서 많이 의논하고 공감대를 형성하여 아이를 낳고 기르기에 보다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은 좋은데, 너무 노골적으로 출산과 국가를 연결하는 것, 그리하여 나날이 치솟는 물가와 더욱 척박해져가는 교육 환경과 일과 가정 사이에서 겪어야 하는 여러 고민들을 생각하기에만도 벅찰 대한민국 여성들이 아이를 가지면서 대한민국의 미래까지 생각해 줘야 하는 것, 그리고 아이를 적게 낳거나 안 낳는 것(게다가 요즘같은 세상엔 낳고 싶어도 못 낳는 사람들도 많을텐데)이 무슨 이기주의의 극치에 대역죄마냥 취급되는 것, 무엇보다 이 모든 짐들의 대부분이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아직까지 고스란히 여성들의 몫으로 남겨져 있다는 것이 제 2차 세계대전을 전후해 독일의 파시스트들이 국민을 선동하기 위해 찍어낸 그 힘찬 필치의 포스터들과 특히나 그 포스터 안에서 해맑게 웃고 있는 엄마와 아이의 모습 같은 것들이 오버랩 되어 이 광고를 볼 때마다 어쩔 수 없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어째, 내가 너무 '오버'하고 있는 것일까. 뭐, 정말로 그런 것이었으면 좋겠다. 아무튼 난 하루 빨리 저 광고가 얼른 그만 방송되었으면 좋겠다. 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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