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하게도 여행의 마지막 일정을 오사카에서 마무리하게 되었다. 오사카의 은행에서 일하고 있는 친구를 만나기로 했기 때문이다. 원래는 그 친구가 퇴근한 후 같이 저녁을 먹을 예정이었지만 급하게 일이 들어오는 바람에 몇 시간 정도 그 약속을 미뤄 밤 아홉시, 오사카 우메다 역에서 만나자고 덜컥 말해버렸다. 나야 할 일 없는 한량이지만 당장 내일도 고베에서 오사카까지 출근해야 하는 직장인인 그 친구에게 조금은 못 할 짓이다 싶기도 하고, 당장 나도 내일 아침 새벽같이 짐을 꾸려 공항으로 가야할텐데 오사카에서 숙소까지는 과연 얼마만큼의 시간이 걸릴까, 혹시나 기회가 된다면 게스트하우스의 스태프들과 짧게나마 인사라도 나눌 수 있을까(게스트 하우스 스태프들의 퇴근시간은 오후 열시까지다) 하는 생각, 혹은 아까 지나친 가게 이름이 '타코하우스'라고 나는 멕시코의 타코나 부리또 같은 걸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타코야끼 가게여서 '아, 역시 오사카'라는 인상을 받았다든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러는 동안 내 몸은 전차의 진동에 맞춰 흔들린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약속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했기 때문에, 앉아서 쉬면서 책도 읽을 겸 겸사겸사 들어온 카페가 흔들리는 것이다. 이 카페는 한큐 우메다 역 바로 밑에 있어서인지 전철이 지나가면 그 진동과 소움이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그럴 떄 마다 나는 생각, 혹은 망상을 멈춘다. 아니, 방해를 받았다고 해야 할지 흐름이 끊겼다고 해야 할 지, 아무튼 자의에 의한 것이 아닌것 만은 틀림없다. 어릴 떄 부르던 노래 중에 기찻길 옆 오막살이 하는 아기가 기차가 칙칙폭폭 지나가는데도 불구하고 잘도 잔다는 내용의 것이 있었던 게 기억나는데 거 참, 난 놈일세, 하다가도 그 어린 나이에 벌써 생활의 고단함이랄지, 어려움 같은 것에 익숙해져 버린 아기가 딱해 이내 혀를 끌끌찬다(비슷한 감정을 환기시키는 아기로는 엄마가 섬그늘에 굴 따러가면 혼자 남아서 집을 보다가 팔을 베고 스르륵 잠이 든다는 섬집 아기가 있다). 그리고 동시에 기찻길 옆에서 오막살이하는 아기 뿐 아니라 이 진동과 소움에 꿈쩍도 않고 책을 읽거나 담배를 피거나 이야기를 하거나 아무튼 자기 할 일을 알아서 척척 해 내는 이 카페 안의 다른 사람들도 동시에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한다. 아무래도 우메다는 중요한 노선이 모두 지나가는 역이라 그런지 큰 가방을 매고 한 눈에도 여행객임을 알아 볼 수 있는 차림의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물론 혼자서 느긋하게 담배를 피거나 책을 읽거나 하는 사람들도 꽤 있다. 아무튼, 이 가게에서 진동과 소음에 안절부절 못하는 사람은 오직 나 하나뿐, 나머지 사람들은 그 어느 누구도 이 카페가 흔들린다든지 남이 무얼 하는지를 지켜본다든지 하지 않는다. 한국에서는 아직까지 드문 풍경이다.

얼마 전 뜬금없이, 집에서 한 발짝만 나가면 어디에서건 아는 얼굴과 마저치게 되는 학교와 녹두거리가 무척이나 지겹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물론 일이 그렇게 된 것은 내가 학교를 무려 6년째 다니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아는 얼굴과 만나면 인사 한 마디 건네는 데도 내가 지금 여기서 무슨 연유로 낮 동안의 귀중한 시간을 헛되게 보내고 있는지 짧게나마 설명하지 않을 수 없고, 상대가 실제로 그걸 상관하건 말건 어제와 똑같은 옷을 입고 있다거나, 오늘 아침에 머리를 감지 않았다거나 하는 것에 내 스스로 지나치게 신경을 쓰게 되기 마련이라 금방 무척 피곤함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요즘은 가능하면 내가 아는 사람들이 없을만한 곳으로, 그것도 구석자리를 고르고 골라 푹 파묻혀 있는 것에 꽤나 익숙해지게 되었다.

그러나 기차의 진동과 소음에도 꿈쩍하지 않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이런 거리라면, 나는 아마 어디에서건 숨지 않아도 되고 편해질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평생이 가도 나는 이 사람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섞여들지는 못하겠지만, 아니 애초에 이 사람들이 각각 '섞여' 있는지도 잘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저 사람들이 그런 것에 신경을 쓴다거나 대체 어찌된 일이냐고 물어보는 일은 결코 없을테니 그건 또 그것대로 그리 나쁘진 않을 거란 느낌이 들었다. 그래, 나는 오랫동안 이런 걸 기다려 왔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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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18 09:10 2010/08/18 09:10
daily life/in Kyoto l 2010/08/18 09:10
교토대학교에서 시작하여 철학의 길을 따라 긴카쿠지(은각사)를 거쳐 에이칸도, 난젠지에 도착하기까지 10분 정도를 남겨두고 길가의 카페에 막 들어온 참이다. 교토학파의 대표주자로 교토대학교의 교수이기도 했던 니시다 키타로가 자주 산책하던 길이라 하여 '철학의 길'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하니 이름을 붙이는 방법에도 제법 운치가 있다. 이 외에도 노벨상을 수상한 후쿠이 겐이치라는 공학부 교수도 이 길을 즐겨 걸었다던가. 그 후쿠이 교수에게 노벨상을 수상하게 된 비결을 물었더니 '아침에 메모하는 습관과 산책'이라고 대답했다는데 과연, 뇌가 익어버릴만큼 - 일본사람들은 어째서인지 이 무시무시한 표현을 즐겨쓴다 - '무시아쯔이(蒸し暑い, 찜통더위)'한 날씨에 여간해선 끝날 것 같지 않은 길을 걷고 있노라니 그 말이 어쩐지 이해가 될 것 같기도 하다. 키요미즈미치나 여타의 유명 관광지처럼, '이 앞이 바로 유명한 어디어디입니다'라고 알려주기라도 하는 듯이 어지러이 들어서 있는 기념품점이나 식당들도 딱 긴카쿠지까지, 그 다음부터는 주택가에 드문드문 작은 카페나 공방 등이 있을 뿐이라서 처음에는 제대로 가고 있는게 맞기나 한 걸까, 이 길을 처음 걷는 것도 아닌데 이 구제할 길 없는 방향감각은 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 하고 당황하게 되지만 그것도 잠시 뿐, 나중에는 어느 길로 들어서든 거기엔 볼 거리가 있고 '의외의 만남'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기대에 자잘한 자갈이 깔린 완만한 경사의 길을 느릿느릿하게 걸으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역시 어제 킨카쿠지(금각사)를 먼저 다녀오길 잘했어, 여느때처럼 은각사에서 금각사로 가려고 마음을 먹었더라면 지금처럼 느긋하게 걷지는 못했을테지, 하는 생각부터, '모든 길에는 그 길에 맞는 페이스가 있는 것 같아. 제주 올레길 같은 경우는 바다의 소리에 맞춰서 정말로 천천히 걸어야 해. 전국의 등산 좀 했다 하는 장정들이 올레길을 만만히 보고 뻐기며 걷다가 얼마 못 가서 픽픽 떨어져 나가곤 하지.'라는 박종현의 이야기가 잠시 떠올랐다가, 결국 '어디로 가야한다'든지, '어디까지 가야한다'든지 하는 건 중요하지 않아서, 목적지가 어디든 상관없이 그 곳을 향해 이렇게 걸어가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만이 나에게 필요한 것이었다는 느낌이 들어 어깨를 짓누르는 가방의 무게와 발바닥의 통증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며 한동안 발끝과 내 그림자만을 보며 묵묵히 걸었다. 이래서, '길 위에서 나를 찾는다'든지 하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로군, 하면서.

물론, 찾는건 '나' 뿐이 아니니 그 점에 주의하시길. 방금 카페에 들어오기 전 자칭 '오사카에서 여행관계 일을 하고 있는 아저씨'를 만나 이것저것 묻는 물음에 꼬박꼬박 대답했더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은근슬쩍 손을 잡혀 마음에 들었다는 둥, 키스해도 괜찮냐는 둥의 이야기를 들어 반쯤은 도망치듯 옆에 있던 카페에 들어와 이 글을 쓰고 있는 참이기 때문이다(일본은 치안이 꽤나 잘 되어있는 곳이지만 여행자라면, 특히 혼자서 여행하고 있다면 조심해야 할 게 한 두가지가 아니다!).그저께 야스이콘피라구에서 했던 오미쿠지 결과에 '의외의 만남'이 있다더니 그게 설마하니 이런 걸 말하는 건가, 싶어 조금 울적해지려고 하니, 그 전에 빨리 남은 홍차를 마셔버리고 다시 걷기 시작해야겠다. 목적지는 에이칸도를 지나 난젠지, 헤이안진구를 거쳐 기온까지. 만약 거기에 도착해서도 힘이 더 남아있다면 야사카 진자를 통과하여 네네노미치를 거쳐 고조의 숙소로 돌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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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15 18:57 2010/08/15 18:57
daily life/in Kyoto l 2010/08/15 18:57

일본에서의 세번째 날을 맞이하고 있다. 교토의 날씨는 생각보다 덥지 않고(그러나 여전히 땀으로 샤워를 하고 모기에 엄청나게 물린다) 태어나서 처음 묵어보는 기숙사형 게스트하우스도 생각보다는 지내기 편하다. 일본어를 좀 할 줄 아는 덕에 외국인 여행객들보단 스태프들과 더 친해졌다. 아마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저렇게(물론 긍정적인 의미로, 약간의 동경을 담아) 살지는 못할거야, 하는 생각이 들만큼 그들이 영위하고 있는 히피같은(?) 생활을 어깨 너머로 훔쳐보는 게 즐겁기 때문이려니와, 그리고 사실 호되게 당한 경험이 있어서인지 아시아 지역에 여행객으로 머물고 있는 '서양인', 특히 '남자'에겐 여전히 본능적인 경계심을 느낀다.

오늘은 아침 일찍 교토역에서부터 출발해 산쥬산겐도(三十三間堂)를 둘러보았다. 일본의 국보로 지정되어 있는 이 사찰은 1001개의 관음상이 모셔져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 1001개의 관음상을 찬찬히 살펴보면 그 중 한 명은 반드시 자신과 닮은 얼굴이 있다던가 하는 이야기가 전해오는지라, 연중 많은 관람객들이 끊이지 않는다. 3년쯤 전에도 한 번 와 본 적이 있지만 그 때는 토시야(20세가 된 궁도가를 대상으로 1년에 한 번 열리는 궁도대회)가 개최되던 날이어서 전국의 사람들이 특히나 더 몰려들었기 때문에 관음상의 얼굴은 커녕 사람들의 까만 뒷통수와 화려한 전통의상만 실컷 보고 왔더랬다. 다행히 오늘은 아침부터 서두른 탓인지 관람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 그 많은 얼굴들 중에서 나와 닮은 얼굴을 가졌다면 그것도 대단한 인연이겠거니 싶어, 요 몇년간 유달리 '인연'이라는 것에 집착하게 된 나는 행여 관음상 얼굴 하나라도 놓칠세라 뒷사람들이 나를 앞질러 가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천천히 한 걸음 한 걸음 움직인다.

과연, 이란 감탄사가 입에서 흘러나올 정도로 1001개의 관음상은 모두 다른 얼굴들을 하고 있다. 대부분이 속세의 오욕번뇌에서 해탈한 묘한 표정들을 짓고 있지만 개중에는 슬몃 실눈을 뜨고 '불쌍한 중생이로군'하는 얼굴로 나를 지그시 바라보고 있는 관음상도 몇몇 보인다. 어떤 관음상은 지나치게 여성적인가 하면 또 어떤 것은 굉장히 남성적이고, 서양인인가 싶은 얼굴과 동양인인가 싶은 얼굴이 번갈아서 나타난다. 그런가하면 마치 살아있는 인간처럼 생동감이 넘치는 얼굴도 군데군데 섞여있어 나를 깜짝깜짝 놀래킨다. 과연, 이 정도면 하나쯤은 나를 닮은 얼굴이 있을법도 하군.

그런데 관음상을 하나하나 지나쳐 갈 수록 호기심보다는 당혹스러운 기분이 든다. 저건 우리 할머니 닮았고, 저건 친구 누구, 저건 또 누구... 하는 식으로 아는 이들의 얼굴이 눈 앞에 스쳐지나가는데, 심지어는 사회대 건물 복도에서 한두번 스쳐지나간 얼굴들도 언뜻언뜻 보이는데, 당최 내 얼굴은 찾을수가 없다. 아니, 애당초 내 얼굴이 어찌 생겼는지 도통 생각나지 않는다. 하루에 적어도 다섯 번은 들여다보는 얼굴이 아니던가. 그런데도 생각해 내려 하면 할 수록 머리속은 깜깜하기만 하다. 그런 내 앞에서 관음상은 묘한 표정만을 짓고 있다.

결국 1001개의 관음상을 모두 지나갈 때 까지, 나는 내 얼굴과 닮은 관음상을 발견하지 못했다. 실망감, 이라고 해야할지 패배감, 이라고 해야 할 지 모를 야릇한 감정과 함께 깨달은 것은, 결국 내 문제는 '내 자신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것. 무엇을 원하는지, 혹은 무엇을 해야하는지, 아니 하다못해 내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스스로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나는 이렇게 때늦은 사춘기의 열병에 시달리고 있는것이라,는 간단명료한 결론을 얻고 약간은 힘이 빠져 120미터나 된다는 샨쥬산겐도의 긴 복도를 터덜터덜 걸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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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14 13:55 2010/08/14 13:55
daily life/in Kyoto l 2010/08/14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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