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3일부터 일주일간 교토에 갈 거란 계획을 지난 번 포스팅을 통해 알린 덕분에 많은 분들이 내가 교토에 갔다온 줄 아시겠지만, 실은 지금 하고있는 프로젝트의 상반기 결산을 좀 빨리 해 달라는 연락이 와서 결국 교토에 가지 못했다. 30만원이 채 안되는 티켓을 취소하느라 무려 6만원이란 요금을 물고, 현지에서 만나자는 이런저런 약속을 해 둔 친구들에게 급한 일이 생겨 못 가게 되었다고, 미안하다고 일일이 사과하면서, 왜 하필 나인가 하는 억울함을 꾸역꾸역 삼키기 위해 나는 다시 한 번 개미지옥보다 빠져나오기 더 힘들다는 팔자론을 떠올렸다. 울고불고 난리를 쳐도 어쩔 수가 없는 게 팔자란 것이니, 이걸 받아들이면 만사가 편해진다, 했다. 그렇게 마음을 겨우 달래고 나니, 체념에 가까운 평안이 가까스로 찾아드는 듯도 했다. 엄마는 지금 일본에 강풍을 동반한 폭우가 내려 10만 가구가 대피하고 아주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다는 뉴스가 나오더라면서, 내 여행이 취소된 게 오히려 잘 된 일이라고 했다. 굳이 여행을 가고 싶으면 어디 조용한 절에 머물면서 쉴 수 있도록 템플 스테이를 주선해 주겠다고도 했다. 나는 모든 걸 다 때려치우고 한 일주일 정도 교토에 가서 쉬고싶어 비행기표를 구입했다고 했을 때 울먹이던 엄마의 목소리가 생각나, 그냥 작게 한숨을 쉬고, 지금은 바쁘니 나중에 얘기하자고 했다. 그리고 전화를 끊었다.

결산이 한창이던 수요일 새벽에는 그날 아침에 있을 조찬모임을 준비해야했기 때문에 모두가 집으로 돌아가고 텅 비어버린 연구소에 남아 있었다. 나도 모르게 깜박 잠이 들었다가, 한 30분이나 잤을까, 만일을 대비해 맞춰놓은 알람소리에 놀라 잠에서 깼다. 시간이 말도 안되게 흘러버렸으면 어쩌나 싶어 허겁지겁 눈을 뜨려는데, 어쩐지 눈꺼풀이 평소보다도 무거워 눈가를 대충 만져보니 눈물로 범벅이 되어 미끌거리고 축축했다. 꿈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기억해 보려고 해도 잘 생각나지 않았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했다. 꿈의 배경은 분명히 교토였다. 그래서 결심했다. 다시 한 번 교토에 가자. 꿈에서도 못 잊을만치 간절하고 그립다는데, 까짓거, 저 40도가 넘나드는 축축한 열사(?)의 도시로 나는 가자. 이것은 지난번보다 훨씬 더 충동적인 결정이었고 오를대로 올라버린 엔화를 고려하면 심지어는 합리적이지도 않은 결정이었지만, 일전에도 밝혔듯이 내가 언제는 계획 세워놓고 사는 사람이었나. 그렇게 나는 다시 한 번 교토로 가는 비행기표를 끊었다. 이번에는 8월 12일부터 18일까지, 6박 7일의 일정이다. 좀 더 일찍 떠나고도 싶었지만 요즘이 딱 성수기인데다 한정된 예산을 생각하면 그나마도 빨리 떠나는 것이다.

그 다음 일은 빠르진 않아도 그럭저럭 진행되고 있다. 우선은 결산작업을 마무리하고, 그끄저께는 그나마 한국인이 적게 온다는 게스트하우스를 고리고 골라 예약했고, 그저께와 그제는 교토 여행기 중 볼만하다 싶어 보이는 걸 대여섯권 정도 골라 구입하고 마음 내키는대로 읽으면서 어떡하면 엿새 동안의 일정을 후회없이 보낼 수 있을까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러고 있자니, 내가 또 언제 어떤 일에 이만치 열심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어 새삼스럽기까지 하다. 물론 그렇든 말든 내가 정해진 시각 정해진 장소에서 정해진 날짜에 정해진 비행기를 타고 떠날 것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8월 19일에 동경에서 갑자기 회의가 열리게 된 것이 좀 불안하긴 하지만 정말 피치못한 사정이 일어나지 않는 한 나는 약 20여일 후에는 교토에서 일기를 쓰고 있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세상에 무서울 것이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마음 한 구석에는 스멀스멀 불안이 올라온다. 회의때면 으레 따라오는 여러가지 잡무들에 치여 또 한 번 티켓을 취소하게 되는 건 아닌가, 하는 불안감도 불안감이지만, 그보다 더 나를 괴롭히는 것은 '왜, 하필, '다시' 교토인가' 하는 근본적인 물음이었다. 사실 교토 말고도 나에겐 몇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일본 여행에 쓸 돈으로 차라리 어느 지방의 소도시쯤에 가서 호화(?) 생활을 며칠 느긋하게 즐기다 오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었고, 홍콩이나 싱가폴이나 태국처럼, 며칠 동안은 나를 책임져줄 수 있는 친구들이 있으면서도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으로 행선지를 정할 수도 있었다. 실제로 싱가폴에 사는 친구한테는 언제쯤이 한가하겠느냐고 물어보기까지 했으니까. 그러나 이 모든 선택지들을 깡그리 무시하고, 결국 나는 또 한 번 교토행을 택했다. 그래도 모처럼의 여행인데 새로운 곳에 가 보는 것이 어떠냐는 주위의 조언도 내팽개쳤다. 일본이 평소에 못 가는 데도 아니고, 모르는 곳도 아닌데 꼭 생활비를 헐어서까지 가야겠냐는 핀잔을 들을까봐 부모님께는 아직 말씀조차 드리지 않았다.

그렇게까지 해서 꼭 교토에 가야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고 묻는 이가 일본인이라면, 나는 아마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교-토와 와따시니톳떼와 다이니노 고쿄 미따이나 바쇼데스까라(京都は私にとっては第二の故郷みたいな場所ですから。교토는 저에게 있어선 제 2의 고향같은 곳이니까요.) 그러나 이건 쌍방이 듣기 좋자고 하는 소리라, 그런 말을 하면서도 스스로는 마음 속으로 이렇게 질책할 것이다. 사실은 굳이 교토가 아니어도 괜찮지 않느냐고. 너는 단지 하루 하루를 무사히 보내는 것 만으로도 크나큰 성취감을 맛볼 수 있었던 그 때 그 시절로 도피하고 싶은 것 뿐이지 않느냐고. 장래희망이요? 일본의 작은 도시에 가서 편의점 직원이나 하면서 프리타로 사는 거예요, 라는 말이 금방 그렇게 튀어나올 수 있는 건 실제로 그렇게 할 용기도 없으면서 단지 말만 많다는 증거인거야, 애초에 너는 말이 너무 많아, 하는 지적을 받은 적도 있었다. 그러니 어쩌면 이 글은 여행기, 가 아닌 도피기, 라는 제목을 달아야 할 지도 모른다.

한편으로는, 그 당시엔 멋도 모르고 헛되이 보내버렸던 시간이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 나날들이었는지, 지금은 그 때가 26년의 인생을 통틀어 마냥 '일탈'이었던 것 처럼 느껴지지만 당시에는 그것이 나름의 '일상'이었음을, 그러니까 내 삶에는 '이러한 일상도' 있었음을 몸소 확인하러 가는 것이라고 대답할 수도 있다(솔직히 틀린말도 아니지 않는가, 아무도 나에게 틀렸다고 말 한적도 없지만). 그리고 그렇게 내 눈으로 한 번 확인하고 나면 적어도 반 년 정도는, 다시금 내 인생이 세계에서 제일 비참한 듯 착각하며 팔자론을 곱씹지 않아도 그럭저럭 버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희망도 가지고 있다. 겨우 반 년, 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반 년은 내가 이 이상 대학원에 남아있어야 할 지 말지를 결정하는데 그리 부족한 시간은 아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굳이 '다시' 교토에 가는 이유는, 그 곳이 내 인생의 분기점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남들이 다 겪는 때 사춘기를 제 때 겪지 못한 탓인지 추억이나 기쁨, 같은 것 뿐 아니라 방황이나 우울, 좌절, 자기혐오 같은 것들까지 그 모든 것이, 그 곳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당시에는 알 수 없었지만 그 곳을 떠나온지 3년째로 접어드는 지금에 와서 찬찬히 그 때를 돌아켜보면, 당시부터 지금까지 나는 계속, 자잘한 자갈이나 잡풀더미 따위에 발이 걸리고 무릎이 깨지면서 이유를 알 수 없는 방황을 해 오고 있는것이 분명하다. 물론 방황이 그리 나쁜 것 만은 아니라 이리 저리 고민하다 보면 언젠가는 더욱 나은 상태에 도달할 수 있을 거라는 턱도 없는 긍정적 사고를 따라 생각한다면 이대로 이렇게 지내는 것도 안될 것야 없겠지만, 이놈의 방황이라는 것이 주변의 사람들도 피곤하게 만들 뿐더러 무엇보다 내 자신이 더 이상은 견딜 수 없다, 는 한계를 느낀다. 그렇다고 섣불리 이 구멍들을 틀어막으려 했다간 오히려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지기만 할 뿐이란 걸 몇 번의 시행착오를 통해 겪은터라, 결국 '일을 저지른 사람이 그 일을 해결해야 한다'는, '모든 것은 시작점으로 되돌아 가야만 한다'는 자명한 진리에 따라 급하게 교토여행을 결정하게 되었다.

교토는 나에게 마냥 아름다운 장소가 아니기 때문에, 그리고 하필이면 1년 중 교토가 가장 더운 때를 고르고 골라 가는 것이다보니, 6박 7일의 다소 모자란듯한 일정 속에서 내가 보고 느끼는 것은 대개의 여행기에서 볼 수 있는 찬양 일색의 풍광들이 아닐 수도 있다. 혹은, 이렇게 무리해서 여행을 갔다오고도 결국 내 삶은 여전히 불분명한 채로, 또 어딘가 엉뚱한 곳에서 삽질하며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명쾌한 해답을 찾아 헤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그 누구도, 그 어떤 것도 알 수 없다. 떠나 보기 전에는. 그리고, '떠나 보면 알게 될 것이다'. 따라서 여행을 떠나기 전, 남아있는 시간동안은, 최대한 후회 없는 여행을 하기 위해 여러가지 준비작업들을 하려고 한다. 시간이 난다면 조금은 성실해져서 일기도 꼬박꼬박 써 보고(아, 그러나 글을 쓰는 건 아직은 좀 무섭다. 글을 줄기차게 써 댈 만큼 내 속에 뭔가가 들어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니까 혹여 말씀 한 마디 보태주려 하실 참이었거든 잘 다녀 오라는 격려나 한 마디 부탁드린다(혹은, 글 좀 꼬박꼬박 쓰라고 뒷통수를 후려갈기셔도 좋다). 어쨌든 오늘은 7월 26일, 아끼던 08학번 후배들 몇 명이 입대하는 날이고, 출발까지는 17일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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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26 00:46 2010/07/26 00:46
daily life/in Kyoto l 2010/07/26 00:46

어영부영하다보니 블로그 여섯 번째 기념일도 벌써 저만치 지나갔다. 최근 몇 년 간 심하게 글을 띄엄띄엄 쓰긴 했지만 그래도 지난 5년간 단 한번도 블로그 생일을 놓친 적은 없었는데 하루 이틀도 아니고 거진 열흘씩이나 지난 지금에야 기념일 운운 하는 건 조금 염치 없는 짓이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하고.


솔직히 말하면 기념일이라는 걸 몰랐던 건 아니다. 사실은 생일이 되기 며칠 전부터, 이제 나흘 후면, 사흘 후면, 이틀 후면, 내일이면, 하고 세고 있었다. 그러나 요즘 생긴 나쁜 버릇 때문인지 날짜가 다가오는게 기쁘거나 뿌듯한게 아니라 부담스럽고 초조해서 그만, 땅속에 머리를 박은 타조마냥 기념일이 지나가는 걸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 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 만사가 귀찮았든지, 더 이상 무엇을 글로 써야 할 지도 더 이상 모르게 되었다든지, 더 이상 블로그를 남겨둘 만한 이유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든지 했을 것이다. 물론 굳이 변명을 하자면 바빴다, 는 말을 할 수도 있겠지만 또 그렇다고 하기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허송 세월만 보냈던 시간들이 워낙에 많은지라 양심에 찔려서라도 그런 말은 못 하겠고.


무섭게도, 이제는 과제물 낼 때 쓰는 글조차 쓰기 어려워졌을 뿐 아니라 왜 글을 써야 하는지 조차 모르게 되어버렸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글이 안 나오는 날들이 길어지면 길어질 수록 초조함에 미묘하게 히스테릭한 상태가 되기도 했는데, 이제는 한 달간 한 개, 두 개의 글을 써 내면서도 그냥 데면데면하다. 생각나는 짬짬이 뭔가를 적어두는 버릇을 들이면 글 쓰는데 좀 도움이 될까 싶어 트위터를 시작했는데 결국 순간의 배설일 뿐이었는지 한 번 뱉어놓으면 그냥 그 뿐한 문장 이상을 쓰기 힘들어 이 지경까지 왔다.


남에게 소리내어 말하고 싶은 것이 없어졌다는 건 결국 내 속에 남아 있던 알량한 샘물 몇 방울 마저도 다 짜 내어 써 버리고 더 이상 남은 게 없다는 말일 터. 너무 지쳐서, 이젠 당장 내일의 생존을 위해서라도 뭐라도 좀 채워넣어야 할 때가 온 것 아닌가 싶어서 어제 충동적으로 칸사이 공항으로 가는 비행기 티켓을 구입했다. 당장 6월 30일에 또 일본에 갈 예정이긴 하지만 일로 가는 것을 제외하고 단순히 ‘여행’만을 목적으로 생활비를 헐어 해외에 나가는 것은 태어나서 처음이라, 게스트 하우스를 예약한다, 아이폰 지도 어플을 받는다 하며 부산을 좀 떨었더니 이 사소한 것 만으로도 마치 조금은 성장한 기분이 들어 겨우 이만큼 글을 쓸 힘이 났다. 출발은 7월 13일, 그리고 오늘은 출발 16일 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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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26 17:24 2010/06/26 17:24
daily life l 2010/06/26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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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 1년만에 극장에서 본 영화였다. 지루하다, 고는 말할 수 없었지만 그저 그렇게 흘러가다가, 마지막에 가서 큰 울림을 주는 영화였다. 이것을 뭐라 설명할 길이 없어(요즘 글을 안 쓰는 탓인지 자꾸 글을 쓰기가 점점 힘들어 진다) 예전에 썼던 일기를 붙이는 것으로 대신 하려 한다.

쉽게 쓰여지지 않는 시 (2007/05/20)

원래부터가 호흡 짧은 글에 익숙지 않은 사람인 나는 - 그래서 평소 본인은 내 글을 두고 무성영화 상영관에서 등장할 법한 변사들의 흐드러진 말솜씨같다고 생각해왔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 아무리 노력해도 시나 가사나 뭐 그런 것들을 써낼 수 없다. 대학생활 4년이 지나도록 내가 가지고 있는 시집은 달랑 네 권. 그 중에 세 권은 수업때문에 구입한 하이네 시집 한 권과 유하 시집 두 권이고, 나머지 하나는 작년 여름 박병장(이제는 박예비역) 면회하러 갔다 얼떨결에 받아버린 생일선물이었다. 그나마도 지금 그 네 권의 시집은 나로부터 멀리 떨어져있다. 아마도 이젠 창고로 쓰이고 있는 대구의 내 방 어딘가에서 보얀 먼지를 뒤집어 쓴 채로 숨죽이고 있을 것이다. 짐작컨대, 우리집 식구들 중 누군가가 시집을 읽는 모습을 본 기억이 한 번도 없었던 것으로 미루어보아 앞으로도 그 시집들은 한동안 거기 있을 것이다. 어째서 나는 이리도 시를 홀대하는가. 어쩌면 내 몸속에 흐르고 있는 피 자체가 시 같은 것과는 별로 친하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시를 좋아하고 잘 쓰는건 일종의 유전자에 새겨진 각인같은 무엇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아, 이건 너무 궁색한 변명이었나.

각설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내 머리와 심장께에서 펑펑 솟아나고 있는, 수채구멍의 구정물색같은 오욕번뇌 - 나는 이 말이 참 마음에 든다. 달리 무슨 말을 쓸 수 있겠는가 - 들은 평소 내게 익숙한 줄글 같은 걸로는 도저히 전부 표현해 낼 수 없을것만 같다. 지금이야말로 시가 필요한 그 때인 것이다. 혹 되먹지 않은 실력으로 섣불리 그것들을 밖으로 끄집어내어 주저리주저리 읊어댔다간 그것들은 순간 원래의 것보다 훨씬 번잡스러운 무엇이 되어, 그렇지 않아도 변변찮은 나 자신을 더욱 부끄럽게 만들고야 말 것이다. 그래서 나는 시를 즐겨 읽지도 않는 주제에 시를 찬양할 수 밖에 없다. 시가 나의 쓰잘데 없는 감정들에 대한 뒤치닥거리에 유용할 것만 같아서 그런 것은 절대로 아니다. 오히려 나는 시가 가진 절대적인 힘 - 어떤 것이라도 그것의 본질과 나름의 아름다운 면을 끄집어 낼 수 있는 통찰력 - 을 인정하고, 감탄마저 하고 있다. 허나 어쩌랴. 나는 시를 지을 수도 없는 사람인 것을. 이미 나의 피가 시를 거부하고 있는지도 모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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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22 17:48 2010/05/22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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